감독 사각지대 속 소비자 피해 사건 반복적으로 발생
은행 중심 독과점 구조가 혁신·경쟁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금융당국의 책임 회피·사후 규제 문화가 문제를 더 키워
디지털 전환 속 새로운 위험(불완전판매·보안·데이터) 급증
감독체계 개편·독과점 완화 없이는 구조적 문제 지속 가능성

[아시아에이=송기철 기자] 한국 금융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는 단순히 특정 금융사의 실수나 일회성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금융당국의 감독 실패, 은행 중심의 시장 구조, 그리고 규제 체계의 후진성이 맞물려 형성된 거대한 시스템적 결함이 누적돼 있다.

소비자 피해가 한 번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 대책이 발표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똑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되며 금융 이용자는 언제나 약자의 위치에서 동일한 피해를 감당해 왔다. 이는 한국 금융이 단순히 규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독이 필요한 영역을 제대로 보지 않고,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기형적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지난 5년간만 해도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전세사기 연계 대출 부실, 토스미니보험 소비자보호 논란, 증권사의 고위험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등 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문제는 이 사건들 대부분이 ‘사전 위험 징후’를 충분히 포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5년 동안 반복된 금융사고의 유형을 정리한 것으로, 사모펀드·전세사기·디지털장애·불완전판매 등 피해 구조가 유사하게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 사건마다 책임 주체가 분산돼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감독 사각지대가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지난 5년 동안 반복된 금융사고의 유형을 정리한 것으로, 사모펀드·전세사기·디지털장애·불완전판매 등 피해 구조가 유사하게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 사건마다 책임 주체가 분산돼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감독 사각지대가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예를 들어 사모펀드의 경우 판매사, 운용사, 수탁사, 감독당국 등 여러 기관이 동시에 경고 신호를 인지할 수 있는 구조였지만, 실제로는 책임이 분산돼 어느 기관도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후 금융당국은 사후 규제 강화를 발표했지만 이러한 방식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에는 근본적으로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은행 중심의 독과점 구조가 감독 실패와 결합될 때 발생하는 위험 규모가 커진다는 사실이다. 한국 은행산업은 빅5 은행이 대출·예금·지급결제·기업금융·자산관리 대부분을 지배하는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집중되고,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 장벽은 높아지며, 경쟁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수준이 되었다.

독과점 구조에서는 은행이 스스로 혁신할 유인이 줄어들고, 감독당국 역시 은행의 시스템적 중요도를 고려해 과감한 제재를 주저하게 된다. 결국 금융소비자는 경쟁이 아닌 독점 구조의 비용을 떠안으며, 고금리·높은 수수료·불완전판매·리스크 전가 문제를 계속 겪게 된다.

15년간 시중은행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해지며 독과점 구조가 심화된 흐름을 나타낸다.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의 성장은 있었지만 전체 구조를 흔들 만큼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며, 경쟁 약화로 금융소비자 선택권이 좁아지는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15년간 시중은행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해지며 독과점 구조가 심화된 흐름을 나타낸다.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의 성장은 있었지만 전체 구조를 흔들 만큼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며, 경쟁 약화로 금융소비자 선택권이 좁아지는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감독의 방식 또한 시대 변화에 뒤처지는 문제가 있다. 디지털 금융 시대로 전환하면서 금융 리스크의 성격은 완전히 변화했지만, 규제 체계는 여전히 ‘전통 금융’의 프레임에 묶여 있다. 과거 감독은 오프라인 점포, 현장 검사, 문서 중심의 심사로 이루어졌지만, 지금 금융의 위험은 알고리즘 기반 신용평가의 오류, AI 분석의 편향성, 비대면 채널의 불완전판매, 서버 장애, 개인정보 유출 등 기술 기반 리스크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이러한 리스크에 대한 전문 인력·조직·감독 기준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 데이터 기반 대출이나 AI 심사 오류가 발생하면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만, 규제 체계는 여전히 사후 제재 중심으로 움직이며 선제적 대응에는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소비자 보호 체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금융 상품의 손실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아도 적발됐을 때의 제재는 대부분 기관경고나 과태료 수준에 그치고,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특히 비대면 영업 증가로 불완전판매 사각지대가 더 넓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규제는 고도화되지 않았다. 금융회사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제재 비용이 미미하다 보니 반복적인 영업 관행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또한 금융당국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도 문제를 더 키운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금융사는 과한 영업 경쟁을 했다고 질타받지만, 감독당국이 제대로 된 위험 관리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방향의 규제가 아니라, 금융회사·감독당국 간 조율과 협의를 통해 타협적으로 결정되는 규제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제도가 소비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지 않고, 산업안정·기관 간 갈등 최소화·관행 유지가 우선 순위로 놓이면서 구조적 개선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독 체계 자체의 전면적 재구조화다. 디지털 금융의 특성을 반영한 사전 위험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은행 중심 독과점을 해소해 혁신과 경쟁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금융소비자 보호는 사후 보상이 아니라 사전 통제와 정보 비대칭 해소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시장 중심의 경쟁을 촉진하고, 새로운 플레이어가 더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조정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독과점 구조를 유지한 채 감독만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금융 생태계를 개선하기 어렵다. 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감독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감독 실패와 독과점이 결합된 지금의 구조에서는 금융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 피해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책임 있는 감독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관행적·형식적 규제에서 벗어나, 금융 소비자와 시장 경쟁을 중심에 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제는 금융권의 문제가 아닌, 금융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다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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