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결제·송금 시장에서 빅테크의 빠른 잠식 확대
은행 앱은 ‘금융 플랫폼’에 밀리고 고객 체류시간 감소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마이데이터 경쟁이 금융 판도 재편
플랫폼 수수료·추천 알고리즘이 금융의 새로운 힘
플랫폼 이기지 못하면 은행은 수익성과 지배력이 구조적으로 하락

[아시아에이=송기철 기자] 한국 금융시장의 중심축이 조용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금융 소비자는 대부분 은행 앱을 통해 금융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금융 상품을 찾기 위해 은행 앱을 먼저 켜는 것이 아니라, 토스·네이버·카카오 같은 플랫폼에서 비교·추천을 먼저 확인한 뒤 은행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소비 행태가 전환되고 있다. ‘금융의 첫 화면’이 은행에서 플랫폼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있으며, 이 변화는 금융 산업의 구조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지급결제 시장에서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는 전통적 은행의 가장 중요한 고객 접점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토스페이는 일상적인 송금·결제 인프라를 사실상 장악하며 생활금융의 중심에 올라섰고, 이 과정에서 은행 앱의 역할은 단순 계좌 관리 기능으로 축소되고 있다.

표는 최근 5년간 지급결제 시장에서 빅테크 플랫폼이 기존 은행의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한 흐름을 보여준다. 생활결제·모바일결제 기반이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은행의 ‘금융 첫 관문’ 지위가 약화되고 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표는 최근 5년간 지급결제 시장에서 빅테크 플랫폼이 기존 은행의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한 흐름을 보여준다. 생활결제·모바일결제 기반이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은행의 ‘금융 첫 관문’ 지위가 약화되고 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한때 은행 모바일 앱은 고객을 확보하고 다른 금융상품으로 확장하는 핵심 채널이었지만, 이제는 플랫폼 앱 속의 여러 금융 기능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고 있다. 고객의 금융 생활이 플랫폼 안에서 완결되면 은행은 고객 흐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은행의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 약화로 직결된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데이터 경쟁력의 격차다. 마이데이터 제도 도입 이후 은행과 플랫폼이 동일한 금융 데이터를 확보하는 길이 열렸지만, 플랫폼은 금융 데이터 외에도 검색 기록, 소비 패턴, 이동 동선, 온라인 쇼핑 데이터 등 훨씬 넓고 깊은 생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 결합된 데이터는 신용평가·대출추천·보험 제안·자산관리 맞춤 서비스의 정확도와 개인화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으며, 은행이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의 정보 우위를 형성하고 있다. 데이터가 곧 금융 경쟁력인 시대에 플랫폼은 구조적으로 은행보다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기반을 갖춘 셈이다.

표는 은행과 플랫폼 간 데이터 경쟁력 차이를 정리한 것으로, 플랫폼이 금융 외 소비·생활 데이터를 결합하며 압도적인 개인화 서비스 우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금융 유통 구조가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은행의 직접 판매력도 약화된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표는 은행과 플랫폼 간 데이터 경쟁력 차이를 정리한 것으로, 플랫폼이 금융 외 소비·생활 데이터를 결합하며 압도적인 개인화 서비스 우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금융 유통 구조가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은행의 직접 판매력도 약화된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이 데이터 중심 경쟁은 곧바로 ‘추천 알고리즘’의 힘으로 이어진다. 예금·보험·대출 등 금융상품은 플랫폼의 추천 체계에 따라 고객의 선택이 좌우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플랫폼은 사용자의 소비 성향과 리스크 선호도까지 분석해 특정 은행의 대출이나 예금을 먼저 노출시키고, 사용자는 플랫폼이 권한 상품을 더 신뢰하게 된다.

결국 금융상품의 유통권이 은행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은행의 상품 경쟁력은 플랫폼의 노출 정책과 수수료 구조에 종속되는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는 은행의 고부가 서비스 영역이 플랫폼에게 침식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도 플랫폼이 금융을 장악한 사례는 이미 익숙하다. 미국에서는 페이팔·캐시앱(스퀘어)이 소상공인 대출·결제 시장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고, 중국은 알리페이·위챗페이가 금융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해 은행을 ‘계좌 보관소’ 수준으로 축소시켰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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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레볼루트·N26 같은 챌린저뱅크가 기존 은행의 고객을 대거 흡수하고 있으며, 금융 규제체계도 플랫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 국가보다 규제 강도가 높아 변화 속도가 다소 느리지만, 현재 흐름이 이어진다면 은행의 핵심 수익원과 고객 접점이 지속적으로 플랫폼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은행의 대응 속도가 플랫폼의 확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은행 앱은 기능이 많지만 사용자 경험(UX)은 여전히 복잡하고, 개인화 수준도 플랫폼에 비해 낮다. 고객이 하루 평균 플랫폼 앱에 머무르는 시간은 증가하는 반면, 은행 앱 이용 빈도는 줄어들고 있다.

이 격차는 금융상품 판매량과 대출·투자 유입 트래픽까지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은행의 비이자수익 확대도 제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익 다변화를 통해 플랫폼을 따라잡아야 할 시점에 오히려 플랫폼에 더 의존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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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규제 환경도 은행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은행은 건전성 규제·예대율·유동성 규제 등으로 엄격하게 통제받지만, 플랫폼 기업은 기술 기업으로 분류되어 상대적으로 규제 부담이 훨씬 적다. 금융사고 발생 시 은행은 강한 제재를 받지만, 플랫폼은 금융사로 분류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비교적 규제 공백을 누릴 수 있다. 규제 격차는 경쟁 격차로 이어지고, 시장 전체의 균형이 플랫폼 쪽으로 기울게 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은행이 플랫폼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앱 고도화’ 수준의 대응이 아니라 플랫폼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대출·예금·투자·보험·결제를 하나의 통합 서비스로 묶은 ‘슈퍼앱 전략’을 실행하고, 데이터 기반 개인화 추천 엔진을 개발해 플랫폼보다 높은 수준의 금융 전문성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은행 내부의 시스템 구조를 CISO·데이터·AI 조직 중심으로 재편해 기술 기반 경쟁력을 강화하는 작업도 필수다. 플랫폼이 금융의 관문을 장악한 시대에, 은행이 플랫폼을 이기지 못한다면 수익성·브랜드 파워·시장 점유율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금융시장은 ‘전통 은행 vs 플랫폼 은행’의 경쟁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한쪽은 자본·건전성·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다른 한쪽은 데이터·사용자 경험·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2026년의 금융산업은 이 두 축의 경쟁 결과에 따라 향후 10년의 금융 생태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플랫폼 전쟁은 금융산업 패러다임을 결정하는 결정적 전환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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