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기술에서 산업 경쟁 단계로 전환되는 전고체 시장 흐름
도요타 일정은 기술적 근거보다 전략적 홍보 의도 강하게 작용
삼성SDI, 계면 안정·합성·공정에서 앞서, 현실적 상용화 후보로 부상
한국 3사와 QS는 각기 다른 노선을 선택하며 고유한 장단점 드러내
황화물계·산화물계·공정 방식 차이가 상용화 속도와 경쟁력에 큰 영향
[아시아에이=남기성 기자] 전고체 배터리는 오랫동안 ‘꿈의 기술’로 불렸지만, 2026년에 접어든 지금은 이미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가장 중심부에 들어온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더 이상 전고체를 단순한 연구 과제로 다루지 않는다. 실제 상용화를 향한 시간표가 기업마다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완성차 기업들도 전고체를 전제로 한 플랫폼 전략을 조용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결국 이 기술을 누가 언제 먼저 양산하느냐에 따라 2030년 이후 전기차 시장의 위계는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현재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2029년 이전 누가 진짜로 전고체 시장의 문을 열 것인가”라는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하고 있다.
도요타는 이 경쟁의 출발선을 가장 앞에서 끌어올린 회사다. 도요타는 2027~2028년 사이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상용화하겠다고 공언해 전 세계 배터리 산업을 흔들었다. 하지만 기술적 세부 사항을 살펴보면 도요타의 발표는 실체보다 ‘전략성’이 매우 강하게 읽힌다.
도요타의 전고체 기술이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졌지만, 문제는 그 이후의 기술적 근거가 매우 제한적으로 공개돼 있다는 데 있다. 황화물계는 물과 닿으면 황화수소 가스가 발생할 정도로 제조 환경이 까다롭고, 계면저항 문제가 반복 충·방전에서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도요타가 내세우는 ‘주행거리 1,000km 이상’과 ‘10분대 급속충전’ 같은 메시지는 매력적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대면적 전극 제조 기술, 양산 공정 설계, 고체전해질 대량 합성 공정 같은 핵심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 도요타 일정에 대해 “기술보다 마케팅이 앞서 있는 발표”라는 평가가 반복되는 이유다.
반면 삼성SDI는 전고체 기술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로드맵을 가진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SDI는 2027년에 전고체 시제품을 본격 개발하고 2029년에 상용 양산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며,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일정이 “지금까지 나온 로드맵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SDI는 특히 전고체 배터리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으로 분류되는 계면 안정화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고, 900km급 에너지밀도를 가진 시제품 성능을 이미 외부에 공개했다. 여기에 더해 기존 리튬이온 공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 건식 전극, 고온·고압 소결, 압착 공정을 실제 라인 단위에서 검증하고 있으며 고체전해질 대량 생산 공정까지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삼성SDI가 ‘2030년 이전 전고체 시장의 첫 주자’가 될 가능성은 가장 높게 평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삼성SDI와는 다른 기술 전략을 택했다. LG엔솔은 산화물계 전고체 기술을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는데, 산화물계는 황화물계보다 화학적으로 안전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다만 고온 소결이 필수이기 때문에 제조 공정이 매우 복잡하고, 전극과 전해질 사이의 계면저항이 높아 출력 저하가 발생하기 쉽다.
LG엔솔은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장수명·고내구성 설계에 집중하고 있어, 완성차 회사들이 중고급 라인업에서 요구하는 품질 기준에 적합한 기술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LG엔솔은 현대차와의 협업 구도가 강화되고 있어 자율주행·전동화 통합 플랫폼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우선 적용할 가능성이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상용화 시점은 2030년 전후로 예상되며, 안정성을 중시하는 완성차 OEM이 LG엔솔의 전략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SK온은 전고체 경쟁에서 가장 늦게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성장 속도는 가장 빠른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 에너지부의 ARPA-E 프로젝트에 선정된 이후 SK온의 전고체 연구 속도는 크게 가속화됐다. 특히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의 수분 민감성 문제 해결, 계면 접촉 안정화 기술 등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전고체 파일럿 공정 구축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양산 일정이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기술 확보 속도를 보면 2030년 전후 상용화 그룹 안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현대차와의 높은 협업 밀도는 향후 전고체 적용 전기차 플랫폼에서 SK온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분석을 강화하고 있다.
전고체 기술기업으로 알려진 미국 퀀텀스케이프(QS)는 기술적 성능에서는 앞서 있지만 양산 설비가 거의 없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QS는 산화물계 전고체에서 매우 높은 충·방전 특성과 출력 성능을 확보했지만, 이 기술을 대면적 셀로 확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폭스바겐과의 공동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전극 대면적 성형·스택 조립·유닛셀 생산 등에서 생산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아직은 연구실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업계에서는 QS의 상용화 시점을 2032년 이후로 본다. 다시 말해 QS는 ‘기술은 있지만 공장이 없다’는 구조적 약점을 가진 기업이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하면 전고체 상용화의 가장 현실적인 시점은 2029~2031년이며, 2029년 이전에 전고체 시장의 문을 실제로 여는 기업은 삼성SDI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도요타는 발표 시점은 가장 빠르지만 기술 투명도가 낮고, 양산 공정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LG엔솔과 SK온은 2030년 전후로 안정적 상용화가 가능해 보이며, QS는 기술적 강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설비 부족으로 2030년대 초반에야 본격적인 경쟁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6년은 전고체 배터리가 연구실 단계를 벗어나, 실제 산업 전선에서 경쟁을 시작한 첫 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 우위가 아니라 누가 먼저 양산 체계를 완성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느냐, 즉 공정의 완성도와 제조 인프라의 질로 결정될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를 둘러싼 이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그 승자는 2029년을 기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