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장기화로 환율 상단이 재설정된 한국 경제의 현실
무역수지 회복에도 경상수지 체력 약해져 원화 방어력 떨어진 구조
서비스수지 만성 적자가 환율 하한선을 끌어올리는 숨은 압력
반도체 편중 수출 구조가 환율의 탄력성과 안정성을 동시 약화
중국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원화 약세 굳히는 이중 충격
[아시아에이=김한수 기자] 2025년 원·달러 환율은 “과거 수준으로 복귀하기 어려운 새로운 체제”라는 평가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환율이 단순히 글로벌 강달러 흐름이나 특정 월의 수급 요인 때문이 아니라, 한국 경제 구조 전체가 변하면서 상단이 고정되는 형태로 변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제 1,350원대가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 구간’처럼 받아들여질 만큼 균형 수준 자체가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글로벌 금융환경, 한국 산업구조, 중국 경기, 서비스수지 악화 등 복잡한 요인들이 한꺼번에 쌓여 있으며, 이 조합이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환율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미국의 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는 점이 원화 약세를 가장 강력하게 지탱하는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물가, 특히 서비스 물가와 임금 상승이 쉽게 꺾이지 않으면서 연준은 완화 사이클을 비롯할 명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은 단 몇 달 전까지만 해도 “2025년 초 완화”를 당연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연내 여러 차례 인하”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연준의 보수적 기조가 유지되는 순간,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이는 확대되고, 그 결과 달러는 안전자산 지위를 강화하며 원화는 약세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 긴장, 유럽 경기 침체, 중국의 내수 붕괴까지 겹치며 전 세계 자금이 다시 달러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원화는 위험통화로 분류되며 상대적인 약세를 피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미국·중국·유럽이 모두 일정한 성장 흐름을 만들며 달러 약세가 나타나는 시기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불확실성이 상시화되면서 달러 강세가 구조적으로 유지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한국 내부 구조도 환율 안정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황이 한국 무역수지 흑자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수출·산업구조의 편중은 원화 강세로 이어지지 못하는 핵심적 요인이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이미 20~25%대에 달하며, 특정 품목의 호조가 전체 산업 경쟁력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과거처럼 “수출이 늘면 원화가 강세”라는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일부 산업은 강하지만, 다른 제조업이 구조적으로 약화되어 전체 산업 기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단일 품목에 기대는 구조에서는 환율의 탄성(탄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으며, 반도체 사이클이 흔들릴 때는 환율이 단기간 급등하는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크다.
경상수지 중에서도 서비스수지의 급격한 악화는 원화 약세를 더욱 고착시키는 조용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인의 해외 소비는 코로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여기에 로열티·특허료 지급, 해외 IT 서비스 이용 확대, 국적 항공사의 운항 비용 변동 등 복합 요소가 겹치면서 서비스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 한국 경상수지는 상품수지 흑자가 서비스수지 적자를 상쇄하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서비스수지 적자 규모와 속도가 상품수지 개선을 따라잡을 만큼 커졌다. 이는 한국 경제의 달러 유출 압력을 구조적으로 높이며 환율 하단을 끌어올리는 직접적 요소다.
중국 경제의 둔화도 환율 약세의 중요한 구조적 배경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핵심 수출 시장이지만, 중국 경제는 부동산 위기·내수 붕괴·제조업 경쟁 심화 등으로 20년간 이어온 성장 체력을 잃고 있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는 한국의 수출·관광·자본교류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한국의 무역흑자 폭을 제한한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중국 수요에 의존하는 다수 산업이 하향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는 원화가 글로벌 충격에 더욱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2025년 환율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상단 고정, 하단 상승, 변동성 확대”다. 상단은 강달러와 금리차로 고정되고, 하단은 한국의 구조적 약점으로 인해 높아졌으며, 그 사이의 변동폭은 글로벌 리스크로 인해 계속 넓어지고 있다.
환율의 기준선이 이미 올라가 버린 상황에서, 원화 강세로 전환될 수 있는 모멘텀은 매우 제한적이다. 환율 하락 시도가 나타나더라도 강한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고, 글로벌 뉴스 하나만으로도 다시 급등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고환율 체제가 지속될 경우, 한국 경제는 물가·기업 투자·가계 소비·외국인 자금 흐름 등 전방위적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환율이 단기 충격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로운 상시 구조’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한국 경제가 이 새로운 환율 구조 속에서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할지, 그리고 어떤 산업이 구조 변화 속에서 생존 전략을 구축할지에 따라 2026년 이후의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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