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삼킨 빚의 굴레..‘일대일로’의 그림자, 남은 것은 채무뿐
낍화 폭락과 물가 폭등의 악순환..공공투자 붕괴가 불러온 내수침체
작은 경제의 경고, 구조개혁 없이는 미래 없다
[아시아에이=최지연 기자] 2010년대 초 라오스는 ‘동남아의 숨은 성장주’로 불렸다. 내륙국이지만 풍부한 수자원과 광물자원을 보유했고, 인근의 태국·베트남·중국을 잇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투자자들은 이 나라를 ‘다음 베트남’으로 불렀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라오스가 수력발전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수출국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라오스의 평균 성장률은 6~7%대에 달했다. 그러나 이 급격한 성장은 탄탄한 산업 기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차입된 성장’, 즉 외채와 외국자본에 의존한 일시적 호황이었다.
라오스 정부는 인프라 건설을 ‘성장의 엔진’으로 삼았다. 도로, 철도, 댐, 송전망, 산업단지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그 자금의 대부분은 중국의 ‘일대일로(BRI)’를 통해 들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에 개통된 ‘중국–라오스 철도’다. 총 길이 422km, 사업비 59억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라오스 GDP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정부는 이를 “개발의 상징”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대규모 부채였다. 전체 사업비의 70%가 중국 국책은행(CEXIM) 차관으로 충당됐고, 라오스 정부는 그중 상당 부분을 직접 보증했다.
이후에도 수력발전소, 고속도로, 공항 등 ‘국가 대형사업’이 잇달아 추진됐다. 2020년 기준 라오스의 외채는 GDP의 90% 수준이었지만, 2025년에는 116%를 넘어섰다. 특히 부채 중 절반 이상이 외화표시 채권이어서, 환율 변동이 곧바로 재정 부담으로 이어졌다. 라오스 재무부는 “매년 정부예산의 40% 이상이 채무 상환에 쓰이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이 과정에서 재정수지는 급격히 악화됐다.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자 관광산업이 붕괴했고, 세수는 급감했다. 정부는 공공부문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추가 차입에 나섰다. 중앙은행은 국채를 인수하며 사실상 ‘재정의 화폐화’를 허용했다. 그러나 생산 기반이 약한 경제에서 유동성 확대는 곧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2022년부터 라오스 낍(Kip)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달러 대비 낍화 환율은 2년 만에 약 40% 폭락했다. 외환보유액은 11억 달러 수준에 불과해, 3개월치 수입도 감당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낍화를 방어하려 했지만, 금융시장 기반이 취약해 금리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시장에서는 외환 부족으로 ‘이중환율’이 형성됐고, 기업들은 수입대금 결제를 위해 암시장 환율을 적용해야 했다.
낍화 가치 하락은 곧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라오스는 석유, 의약품, 가공식품 등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을 수입한다. 환율 급등으로 수입물가가 오르자, 2024년 인플레이션은 12%를 넘어섰다. 특히 식료품과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서민 생활비가 폭증했다. 교통요금이 두 배 가까이 올랐고, 가계는 교육비와 의료비를 줄이며 버텼다.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라오스 가구의 절반 이상이 “최근 1년간 식사 횟수를 줄였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가 단기적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된 점이다. 라오스 경제는 전력, 광물, 농업이라는 3개 부문에 집중돼 있다. 제조업 비중은 GDP의 8%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중간재·자본재를 수입한다. 수출 역시 수력발전 전력과 구리, 금 등 1차 산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거나 수입비용이 오르면 바로 무역수지가 악화된다. 실제로 2024년 하반기에는 수력발전소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전력 수출이 감소했고, 그 결과 무역적자가 다시 확대됐다.
재정 위기는 다시 ‘내수 붕괴’로 이어졌다. 부채 상환을 위해 정부는 긴축에 들어갔다. 공공투자 예산이 줄면서 건설경기가 냉각됐고, 공공부문 임금 동결로 소비가 위축됐다. 국내은행들은 외화부족으로 대출을 줄였고, 민간기업의 투자도 급감했다. 2025년 라오스 경제성장률은 3.5%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7%대를 기록하던 성장률이 절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금융시스템의 불안도 심화되고 있다. 낍화의 가치가 흔들리자 국민들은 달러나 바트(태국 통화)로 자산을 바꾸고 있다. ‘달러화된 경제(dollarization)’가 가속화되면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더욱 무력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급여를 바트화로 지급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금융정책은 사실상 기능을 잃는다.
라오스 정부는 2024년 이후 재정·통화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수 확대, 국영기업 개혁, 공공투자 효율화 등이 주요 목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세청의 징세 능력은 낮고, 비공식경제 비중이 GDP의 60%를 넘는다. 세금을 걷을 기반 자체가 취약하다. 공공투자를 줄이면 성장률이 하락하고, 성장이 둔화되면 다시 세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라오스가 처한 또 하나의 딜레마는 중국 의존 구조다. 인프라뿐 아니라 금융, 무역, 에너지 대부분이 중국에 묶여 있다. 전체 외채의 47%가 중국계 금융기관에서 발생했고, 수입의 절반이 중국산이다. 라오스가 자국 경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현지에서는 “라오스가 사실상 중국의 위성경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스 정부는 외자 유치를 계속해야 한다. 내수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불안한 통화, 불투명한 법제,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신규 투자에 신중하다. 외자 의존도를 줄이자니 성장이 꺾이고, 유지하자니 부채가 불어난다. ‘성장과 안정 사이의 줄타기’가 라오스 경제의 가장 큰 고민이다.
라오스의 위기는 단순히 한 나라의 부채 문제를 넘어, 소규모 개방경제가 외부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경제규모가 작을수록 외채·환율·물가의 상호작용은 훨씬 더 폭발적이다. 라오스의 화폐가 하루 만에 5%가치가 떨어지는 동안, 외채는 그만큼 늘어나고 실질임금은 줄어든다. 이런 악순환은 재정개혁, 통화안정, 산업다변화가 함께 진행되지 않는 한 멈추기 어렵다.
세계은행은 라오스에 “재정 긴축보다 구조개혁이 우선”이라고 권고한다. 세입 기반을 확대하고, 국영기업 부채를 줄이며, 민간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ADB 역시 “공공부문 중심의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다”며, 중소기업 지원과 인적자본 투자로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개혁은 정치적 의지와 국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한때 ‘아시아의 배터리’로 불렸던 라오스는 지금 ‘빚의 배터리’가 되었다. 수력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해도 그 수익의 상당 부분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민들은 여전히 전기요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개발의 상징이던 철도는 여전히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라오스의 위기는 멀리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프라 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외자 유입을 성장의 지표로 착각하는 개발도상국의 전형적인 함정이다. 외채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만들지 못한다면 부채는 결국 성장을 집어삼킨다. 라오스가 보여주는 것은 그 단순하면서도 잔혹한 진리다.
‘부채로 세운 성장의 끝’은 라오스의 현실이지만, 동시에 이 시대 모든 신흥국의 경고다. 성장의 숫자에 가려진 채무의 그늘을 외면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라오스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