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재정위기, 한국이 배워야 할 경고의 거울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
산업 집중과 대외 의존도, 한국 경제의 취약 고리
가계·기업부채와 재정 악화, 새로운 위기 뇌관으로 부상
불균형이 누적되면 위기는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아시아에이=송기철 기자] “위기는 반복된다, 다만 모습이 달라진다.” 프랑스의 재정위기는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구조적 위험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프랑스는 고령화 심화, 경직된 노동시장, 높은 사회보장 지출 구조로 인해 국가채무가 장기간 누적되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지출 확대가 고착화되면서 국가부채는 GDP 대비 110%를 넘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복지지출은 국민적 합의와 정치적 이유로 줄일 수 없었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이는 세입 기반을 약화시키면서, 국가채무를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는 구조를 고착화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프랑스를 “위기국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부실 위험이 축적된 나라”로 분류하며 지속적인 경고를 보냈다. 유럽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이탈리아처럼 즉각적인 붕괴는 없었지만,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오늘날에도 불안정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례는 한국에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한국 역시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복지 지출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나, 잠재성장률은 하락하고 세수 기반은 취약해지고 있다. “성장 없는 부채”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프랑스가 보여주고 있으며, 한국이 제때 제도적 개혁과 재정·부채 관리에 나서지 않는다면 같은 길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주목하는 성장과 동시에 반복되는 위기를 경험해 왔다. 1997년 외환위기는 단기외채 의존과 외환보유액 부족, 대기업의 과도한 차입경영이라는 불균형이 누적된 끝에 발생했다. 단기간에 대규모 외환유출이 발생하면서 환율 방어가 불가능해졌고, 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이후 구조조정과 제도 개혁을 통해 일정 부분 체질 개선을 이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다른 형태의 충격이 찾아왔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촉발했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던 한국은 수출 급감과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두 차례 위기는 “위기는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구조적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제는 과거와 또 다른 위험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대외 의존도와 수출 집중 구조가 약점이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소수 산업에 수출이 지나치게 의존되어 있어 특정 산업이 흔들리면 국가 전체의 성장률이 영향을 받는다. 미·중 갈등 심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반도체 패권 경쟁 등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단일 산업 집중 리스크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가계·기업 부채 누적이 심각하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0%를 이미 초과했으며,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면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소비 위축은 물론, 연체율 상승과 금융기관 부실 위험까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부채 역시 문제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저금리 시기에 빌린 자금의 만기 도래와 금리 부담 증가로 경영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 기업 수익성이 낮아지는 가운데 부채 상환 부담이 늘어나면, 기업 부실이 연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재정 건전성 역시 새로운 뇌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확장 재정을 선택하면서 국가채무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단기간에 GDP 대비 채무 비율이 크게 높아졌고, 앞으로 연금·의료·복지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로 세수 기반은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프랑스와 같은 경로를 밟을 위험을 더욱 높이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가 외채 부족, 글로벌 금융위기가 금융시스템 불안정에서 비롯되었다면, 한국이 직면할 수 있는 다음 위기는 “재정·부채 중심의 위기”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 잠재력 약화다.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생산성이 정체되면서 잠재성장률은 이미 2%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이는 정부와 민간 모두의 부채 상환능력을 약화시키며, 경기 충격이 발생했을 때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세수 감소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재정은 구조적 압박을 받게 된다.
이 모든 요인은 “위기는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불균형이 누적되면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외환 부족, 금융시스템 불안, 재정 악화 등 위기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본질은 불균형이다. 한국은 지금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전철을 밟거나, 또 다른 형태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위기 예방 전략은 세 가지 축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성장 잠재력 회복이다. 혁신 투자, 노동시장 개혁, 인구정책 전환 등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둘째, 부채 관리 강화다. 가계부채 구조조정, 기업부채 건전성 확보, 금융감독 강화가 필요하다. 셋째, 재정 건전성 확립이다. 복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세입 기반 확충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이 세 축이 맞물려야만 한국은 반복되는 위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