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 70%면, 국내 부품업계 ‘납품 사슬’ 붕괴 직면
IRA 이후 ‘조달에서 생존으로’..부품사, 현지 진출 가속화
완성차와 공동개발, 현지업체 협업으로 고부가가치 전환 시도 본격화
스마트팩토리·AI 공정혁신, ‘국내 잔류형 생존 모델’ 부상
구조전환 펀드·R&D 세액공제·해외진출 금융지원 등 대응 시급.
[아시아에이=김한수 기자]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현지화율을 2027년까지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국내 부품업계는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완성차 수출의 중심이었으나, 이제 자동차 산업의 무게중심은 빠르게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은 단순한 해외 공장 확대가 아니라, 공급망 자체를 시장 근처로 옮겨 생산·조달·판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완전형 지역생산 체계(Local for Local)’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부품업체들은 더 이상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전통적 모델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에 직면했다.
아시아에이 데이터분석팀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한국은행 산업연관표, 고용정보원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산업연관–고용탄성 복합모형(Integrated IO–Elasticity Model)을 구축해 부품산업의 구조 변화를 분석했다.
이 모형은 완성차 생산거점이 해외로 이전할 때 국내 부품산업의 생산, 부가가치, 고용에 미치는 간접효과를 정량적으로 추정하기 위한 것이다. 완성차 수출이 10% 줄면 부품산업 생산유발효과는 약 6.5% 감소하며, 이를 바탕으로 현지화율이 65~70%로 상승할 경우 국내 부품산업 생산은 약 20~25% 줄 것으로 예측됐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지화율이 65~70% 수준으로 상승할 경우 국내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2024년 215억 달러에서 2027년 160억 달러로 25%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소형 2차 협력업체들의 매출 타격이 크며, 전체 부품기업 수는 약 8,000개에서 6,000여 개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산업 고용도 31만 명에서 27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흐름은 경기순환적 요인이 아니라, 산업구조의 근본적 변화에 따른 ‘체질적 수축(Structural Contraction)’이다.
위기의 원인은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첫째는 납품망 단절이다. 과거에는 완성차 공장이 울산·화성·광명 등 국내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품업체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납품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미·인도·체코 등 해외 생산거점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국내 부품사는 납품 연결고리를 잃었다.
둘째는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을 포함한 각국의 현지조달 규제다. 북미산 부품 비중이 50% 이상이어야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조건이 강화되면서, 한국산 부품은 가격·원산지 경쟁에서 불리해졌다. 셋째는 기술 전환 속도의 불균형이다. 완성차는 전기차·수소차·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지만, 상당수 중소 협력사는 여전히 내연기관 중심의 부품을 생산하고 있어 기술대응이 늦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부품업계는 생존을 위한 세 가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는 ‘동반 해외 진출(Go Global Together)’이다. 현대차가 북미 조지아와 앨라배마, 인도네시아, 체코 등지에 공장을 세우자, 주요 1차 협력사뿐 아니라 일부 중소 부품사들도 함께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투자비용을 줄이기 위해 합작법인 형태로 진출하거나, 여러 중소기업이 공동 클러스터를 조성해 생산라인과 물류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조지아주에는 현대모비스·현대위아·한온시스템 등 10여 개 협력사가 이미 진출했고, 2026년까지 추가로 20여 개 기업이 진출을 검토 중이다. 이런 ‘공동입주형 밸류체인 모델’은 안정적 납품과 현지 조달 규제 대응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린다.
두 번째 전략은 ‘기술 협업형 전환(Co-Tech Partnership)’이다. 단순히 완성차에 납품하는 수준을 넘어, 현지 기업이나 글로벌 기술업체와 공동개발·합작생산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한온시스템은 2025년까지 미시시피 공장에 5억 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열관리 시스템을 현지에서 직접 개발·생산하며, 효성첨단소재는 켄터키에 탄소섬유 복합소재 공장을 세워 북미 OEM에 직접 납품할 예정이다.
또 중견업체인 평화산업은 인도 공장에서 인도 현지 전장기업과 합작해 배터리 보호부품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단가 경쟁 중심의 ‘하청형 납품 구조’에서 ‘공동개발 파트너십 구조’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스마트팩토리 기반 내재화(Smart Manufacturing Reinforcement)’다. 해외 진출이 어려운 중소 부품사들은 생산설비 자동화, 품질데이터 실시간 분석, 인공지능 공정관리 시스템 도입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정부의 ‘K-스마트등대공장’ 지원사업을 통해 이미 150여 개 부품사가 디지털 전환을 시작했으며, 일부 업체는 공장 내 센서 데이터를 활용해 불량률을 30% 이상 낮추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국내 잔류형 경쟁력 확보’ 전략은 수출이 아닌 기술·품질 기반의 생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 어려움은 여전히 크다. 현지 진출 기업의 경우 초기 투자비용과 현지 인건비 상승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미국·멕시코 지역에서는 숙련공 확보가 쉽지 않아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협력업체들이 현지 기업과 기술제휴를 맺으면서 핵심 공정기술이나 소재 배합 노하우가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잔류형 중소기업 다수는 자금여력과 기술개발 능력이 부족해, 현지화 파도 속에서 도태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자동차부품 산업 구조전환 펀드(Temporary Transition Fund)’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펀드는 해외 진출 기업에는 법인세 감면과 수출보증을, 국내 잔류기업에는 스마트팩토리 전환·R&D 세액공제·친환경 공정개선 보조금을 지원하는 이중 구조를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현지화에 맞춰 ‘공급망 안정화 협의체’를 운영하며, 협력사별 해외 진출 지원 및 기술 공동개발 매칭을 추진 중이다.
아시아에이 데이터분석팀은 “현대차의 글로벌 현지화는 기업의 생존 전략이자 필연적 선택이지만, 그 비용은 국내 부품업계가 대신 치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부품업계의 영업이익률은 2021년 평균 6.1%에서 2024년 4.3%로 떨어졌으며, 기술개발비 비중은 11.8%에서 8.9%로 감소했다. 해외 진출 대기업은 수익성을 높이고 있지만, 내수형 협력업체는 고용과 매출이 동시에 감소하는 ‘양극화 구조’가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
결국 ‘현지화 70% 시대’의 부품업계는 단순 납품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기술 적응력’이다. 생산은 국경을 넘어가더라도, 기술·품질·데이터 역량만큼은 국내에서 강화되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업계의 공동 대응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대차의 성공 뒤에는 산업 공동화라는 대가가 남게 될 것이다. 지금은 부품업계가 하청에서 파트너로, 납품에서 기술로 진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
- [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⑤ “현대차의 중심은 더 이상 한국이 아니다”
- [AI 패권의 새로운 전장, 한국] ② "AI 제조혁명" GPU가 바꾸는 한국 산업지도
- [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④ ‘관세 15% 합의’의 명암 ..국가적 손실과 현대차의 이익
- [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③ ‘현지화 70%’의 그늘 ..국내 생산 공동화 빨라지나?
- [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② '관세 15%’ 이후의 균열..완화된 충격, 여전한 구조적 리스크
- 트럼프 "한국, 반도체·조선 특별한 파트너"
- [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① 관세·무역 리스크와 현대차의 생산전략 변화
- [AI 패권의 새로운 전장, 한국] ③ 엔비디아의 선택 "한국은 세계 AI 질서의 중심"
- [중국의 희토류 패권] ② ‘희토류는 무기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 전략
- 이창용 총재 "금리 인상 아냐" 진화 시장 안도…증권가 "급등 과도"
- [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⑦ 조지아·앨라배마·멕시코 생산벨트의 실체
- [배터리 산업 전망 2026] ① 전고체 상용화 전쟁..누가 시장의 문을 먼저 여는가
- [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⑧ 정의선 회장의 글로벌 확장 전략과 한국 산업에 주는 부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