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율 관세 위협 속에 ‘국가별 생산’으로 회귀하는 자동차 산업
조지아 메타플랜트, 75억 달러 투자, 연 30만 대 생산
국내 공장은 수출감소·부품업계는 구조조정 압박 우려
관세 방어의 대가로 ‘글로벌 자금운용 유연성’ 약화 가능성
현지화와 기술 전환의 조화가 향후 5년 현대차 운명 좌우

[아시아에이=김한수 기자] 세계 자동차 산업은 지금, ‘글로벌 분업’에서 ‘국가별 보호’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이어진 공급망 불안,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각국의 산업안보 강화 흐름은 자동차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을 ‘북미 내 생산 차량’으로 제한했고, 2024년 이후에는 중국산 배터리와 핵심광물이 포함된 차량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배제하기로 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25% 수입차 관세 부활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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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보호무역 강화 기조는 현대자동차에게 심대한 전략 수정 압박을 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 내 전기차 현지 생산 비중을 대폭 높이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에 건설 중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Metaplant America)’는 약 75억 달러 규모의 투자로, 현대차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단일 프로젝트다.

완공 후에는 연간 3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며, 아이오닉5·GV70 EV·기아 EV9 등 그룹 전기차 핵심 모델을 현지에서 조립해 판매할 예정이다. 미국산 부품 비중을 높여 IRA 요건을 충족함으로써 소비자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현대차는 이미 2024년 기준 북미 전체 판매의 약 45%를 현지 생산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2027년까지 이 비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동시에 앨라배마·조지아 등 남부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도 추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해 연간 35GWh 규모의 배터리를 현지에서 조달하게 되면, 사실상 ‘미국 내 완결형 EV 생산체계’가 구축된다. 이는 단순한 시장 대응이 아니라, 향후 10년간의 자동차 산업 생존전략이라 할 만하다.

분석 및 자료정리=아시아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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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같은 ‘현지화 확대’는 국내 공장과 부품사에 상당한 충격을 동반한다. 현대차 울산·아산공장의 해외 수출 비중은 여전히 40~45% 수준인데, 미국 내 조립 비중이 늘어날수록 국내 생산은 자연히 감소한다. 엔진·배기계통·변속기 등 내연기관 중심 부품업체는 매출 기반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생산량은 2015년 456만 대에서 2023년 385만 대로 약 15% 감소했다. 특히 중소 협력업체의 경우 수출 감소와 기술 전환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폐업하거나 해외 이전을 고려하는 곳도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화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다. 울산, 전북, 충남 등 자동차산업 의존도가 높은 지방은 고용 충격에 취약하다. 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산업 고용의 63%가 지방 중소도시에 집중돼 있다. 미국 현지공장 확대는 한국의 생산일자리 일부를 해외로 이전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고용 없는 수출 증가’라는 구조적 딜레마를 심화시킨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등과 함께 28일 사우디아라비아 일정을 마친 후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포항경주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등과 함께 28일 사우디아라비아 일정을 마친 후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포항경주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관세 리스크 또한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특정국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산 완성차는 차량 한 대당 평균 5,000달러의 비용이 추가된다. 이는 연간 약 10만 대 수출 기준으로 5억 달러(약 6,800억 원) 규모의 부담이다. 현대차의 수출 채산성은 급격히 악화되고, 환율 변동성까지 맞물릴 경우 국내 생산기지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반면 미국 내 공장 가동률은 높아지겠지만, 이는 곧 ‘현지 이익 집중’이라는 또 다른 리스크를 낳는다. 본사로의 이익 환류가 제한되고, 현지 재투자나 법인세로 흡수되면 그룹의 글로벌 자금 운용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대차는 미국 외 지역의 전략적 거점도 재조정하고 있다. 인도 공장은 소형 SUV ‘베뉴(Venue)’를 중심으로 아세안·중동 지역 수출을 담당하며, 멕시코 공장은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의 무관세 혜택을 활용해 북미 수출을 보완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자동차는 올 2분기 합산 매출액 77조 6363억 원, 영업이익 6조 3664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9.6% 감소했다. 합산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한 것은 2020년 2분기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사진=뉴스1
현대차·기아자동차는 올 2분기 합산 매출액 77조 6363억 원, 영업이익 6조 3664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9.6% 감소했다. 합산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한 것은 2020년 2분기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사진=뉴스1

인도네시아에서는 현대차 최초의 동남아 완성차 공장을 세워, 일본 브랜드가 장악한 시장에 도전 중이다. 즉, 현대차의 ‘글로벌 현지화’는 단순히 미국 대응책이 아니라, 전 세계 생산거점을 분산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다층적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의 역할 축소를 방관할 수는 없다. 산업연구원(KIET)은 “완성차의 현지화는 불가피하지만, 국내 부품산업을 고부가가치 전동화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기차·배터리·자율주행 부문에서 국내 기업들이 소재·소프트웨어·AI 제어 등 핵심 영역을 선점해야 ‘산업기반 공동화’(industrial hollowing-out)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차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히 ‘미국 공장을 얼마나 늘릴 것인가’가 아니다. 보호무역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균형점을 찾는 일, 즉 “국내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생존을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시험대다. 향후 5년,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를 다시 정의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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