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청산 피해 속출, 투자자 13% 손실 경험
담보가치 하락 시 순식간에 원금 증발하는 구조적 위험
투자자 보호 장치 부재, 불완전 판매 논란 확산
제도권 금융과 달리 규제 공백 속 무방비 노출
청년층 가계부채 심화, 사회적 파장 우려 커져
[아시아에이=최지연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의 ‘렌딩플러스(Lending Plus)’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 투자자 피해가 현실화되며 불완전 판매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국회 제출 자료와 언론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렌딩플러스 이용자 가운데 약 13%가 강제 청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 통계상의 숫자를 넘어, 수천 명 단위의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입은 셈이다. 피해자들은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고지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집단소송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A씨는 보유하던 이더리움을 담보로 맡기고 2배 레버리지를 활용해 추가 매수에 나섰다. 그러나 담보 가치가 단 하루 만에 급락하면서 자동 청산이 발동했고, 결국 원금 대부분을 잃었다. 그는 “위험을 충분히 설명받지 못한 상태에서 상품을 이용했다”며 불완전 판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투자자 B씨는 “레버리지를 이용하면 손실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에서 강제 청산이 이뤄지는지는 몰랐다”며 “마치 증권사 신용거래처럼 일정한 보호장치가 있을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렌딩플러스의 구조는 담보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면 거래소가 담보를 강제로 매도해 대여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가상자산 가격 변동성이 극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담보 가치는 단 몇 시간 만에 무너질 수 있다. 투자자가 대응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에서 청산이 이뤄지면 담보는 급락장 속에 헐값에 처분되고, 투자자는 잔여 자산을 거의 돌려받지 못한다.
특히 레버리지를 활용할 경우 손실 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이 5% 하락했을 때 원금을 그대로 보유한 투자자의 손실은 제한적이지만, 2배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는 10% 이상, 4배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는 20% 이상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 같은 구조적 위험은 투자자가 스스로 방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상품이 사전 교육이나 위험성 테스트, 투자자 적합성 평가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증권사의 신용융자나 FX 마진거래의 경우 투자 경험·자산 규모에 따라 한도가 달라지고, 적합성 원칙에 따라 투자자가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그러나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는 법적 규제가 미비해, 계정만 있으면 누구든 고위험 상품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투자자가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했다면 이는 전형적인 불완전 판매”라며 “제도권 금융에서라면 허용되지 않을 구조가 코인 시장에선 사실상 방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개인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20~30대 청년층의 비중이 크다. 강제 청산을 당한 일부 투자자들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고금리 대출을 추가로 떠안았고, 신용등급 하락으로 금융 접근성이 악화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투자 실패가 아니라, 청년층 가계부채 심화, 소비 여력 위축, 장기적 자산 격차 확대라는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학계에서는 과거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신용융자 남용이 금융당국의 제재를 불러왔던 사례를 상기시키며, “가상자산 렌딩은 과거 주식시장 ‘빚투’의 폐해를 되풀이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빗썸은 지난 7월 말 기존에 운영하던 ‘상승장 렌딩’, ‘하락장 렌딩’, ‘간편렌딩’ 등 서비스를 종료하고, 모든 대여 상품을 ‘렌딩플러스’로 일원화했다. 레버리지는 초기 최대 4배까지 허용됐으나, 금융당국이 8월 중순 “가이드라인 마련 전까지 신규 출시 중단”을 권고하자 빗썸은 레버리지를 2배로 낮추는 방식으로 부분 조정했다.
그러나 8월 초 서비스 재개 직후 불과 사흘 만에 1,791억 원 규모의 대여가 성사되며 수요는 여전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단기 수익을 노리고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투자자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규제 공백에 있다. 현행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거래소 운영과 자산 보호에 집중돼 있을 뿐, 대여·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 거래소들은 자율적으로 상품을 설계·운영하며 시장 점유율 경쟁을 벌였고,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전가됐다.
금융당국과 업계 협회(DAXA)는 9월 5일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레버리지와 금전성 대여를 제한하고, 투자 경험에 따른 한도 설정·자산 범위 규정을 새롭게 도입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을 구제할 제도적 장치는 미비하다.
빗썸 렌딩 서비스 논란은 단순히 한 거래소의 신사업 실패나 과도한 마케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고위험 구조를 그대로 개인에게 떠넘기고, 당국은 사후 대응에 그쳤으며, 투자자들은 충분한 정보와 보호 장치 없이 고위험 상품에 뛰어든 결과였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투자자 보호 체계 강화와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