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글로벌 진입 이후 과제는 ‘운영 내재화’

한 제약사 연구원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사내용과 무관)
한 제약사 연구원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사내용과 무관)

[아시아에이=김수빈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서 ‘진입’ 단계를 넘어 ‘정착’과 ‘확장’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23일 딜로이트가 공개한 '제약바이오 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 CEO들은 단순 기술수출이나 수출 비중 확대에서 벗어나, 다국적 기업과 같은 조직 구조와 운영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일본 제약사들의 글로벌화 사례가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국내 기업들에게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 단계적 운영모델 전환...‘분산형’서 ‘전사 통합형’으로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진출 초기, 현지 자회사 중심의 분산형 구조를 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글로벌 포트폴리오 운영의 비효율, 의사결정 속도 저하, 표준화 부족 등의 문제에 직면한다.

이에 따라 점차 본사가 전략·재무·인사·리스크 등을 총괄하고, 지역 단위로 실행하는 ‘전략적 통제 모델’ 또는 ‘완전 통합 모델’로 전환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들은 미국·유럽 시장에 핵심 부서를 분산 배치하며, 기능별 통합과 시장 대응력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러한 접근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네마와시’식 문화 탈피...빠르고 명확한 의사결정 체계 필요

글로벌화된 조직은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민첩하고 명확한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국내 제약업계 역시 여전히 ‘합의 중심’ 방식이 조직 문화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현지 리더가 즉각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탑다운 방식이 효율성을 높인다.

일본 기업들도 전통적인 ‘네마와시(根回し)’(의사결정을 하기 앞서 의견을 조정하여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문화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 또한 전략적 방향 설정과 실행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직문화 혁신이 필요하다.

◇ 글로벌 인재 확보와 활용 전략, ‘선택’ 아닌 ‘필수’

해외 사업 성공의 핵심은 결국 인재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 현지 전문 인력을 어떻게 유치하고 조직 내 통합할 것인가는 지속적인 과제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 브랜드 인지도 부족 등으로 인해 우수 인재 유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초기부터 글로벌 감각을 갖춘 리더 육성과, 본사-현지 간 순환근무 시스템,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조직문화 정착 등 구조적 접근이 필수다. 귀국 후 글로벌 경험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제도 설계도 병행돼야 한다.

◇ 거버넌스·조직 구조 정비...“글로벌 체계 구축 선행돼야”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글로벌화된 체계가 요구된다. 이사회 구성에서 외국인 사외이사의 참여 확대, 글로벌 의사결정 권한 분산, 주요 시장에 대한 자율권 부여 등은 단순한 진출을 넘는 ‘내재화 전략’의 핵심이다.

또한 기업 내부 부서를 기능별로 글로벌에 분산 배치하고, 지역별 거점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예컨대 R&D는 국내에 두되, 사업개발·임상·규제는 미국에, 상업 기능은 유럽에 배치하는 식이다.

◇ ‘진출’이 아닌 ‘통합’ 준비...선제적 전략 수립 필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이제 단순한 글로벌 진출 전략을 넘어, 운영 체계, 인재, 거버넌스, 문화 등 전방위적 글로벌 내재화가 필수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특히 미국과 유럽 시장은 인재 경쟁과 규제 기준이 매우 높아, 전략 없이 진입할 경우 ‘수출기업’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글로벌 파트너십 체결이나 제품 등록을 넘어, ‘글로벌 기업처럼 일하는 방식’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며 “조직 구조와 사람, 의사결정 문화까지 동시에 바꿀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글로벌 진출’이 아닌 ‘글로벌 내재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이를 위한 전사 차원의 구조 전환과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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