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방향성 환영...보조금·주52시간제 등 핵심 요구 반영해야"
구체적 로드맵·지속적 소통 통한 정책 신뢰 확보 관건
[아시아에이=이준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일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 경제 미래 먹거리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을 정조준하고, 집중 육성에 나선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1호 공약'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을 전면에 내세웠고, AI 분야에는 1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투자 계획을 밝히며 글로벌 3대 강국으로의 도약을 공언한 상태다.
업계는 새 정부의 강력한 육성 의지에 일단 환영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과거 정부에서 반복됐던 용두사미식 지원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정책 지속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도체 초격차 유지 총력...'보조금·노동 유연성'은 업계 숙원=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반도체 산업 육성책 핵심은 '압도적 초격차 기술력 확보'와 '견고한 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2나노 이하 공정 기반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조성 및 첨단패키징 지원 확대 △판교 K-팹리스 밸리 조성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육성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중소기업과 수요 대기업 간 협력 강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최첨단 메모리 기술 선도를 통한 AI 반도체 시장 주도 등을 주요 정책 과제로 설정했다.
더불어 차세대 AI 반도체 기술 개발 지원,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도 비중 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국내 생산·판매 반도체에 대한 최대 10%의 생산세액공제 적용 약속도 나왔다.
이러한 정책 추진의 법적 기반이 될 '반도체특별법'의 신속한 제정도 약속했다. 이 법안에는 기업 대상 보조금 지급과 추가적인 세제 지원 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직접 찾아 "반도체 산업이 타격을 받지 않고 세계 시장을 계속 주도하려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의견을 듣고 싶다"며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 기대감 이면에는 해묵은 과제에 대한 아쉬움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직접 보조금' 문제다. 미국은 칩스법을 통해 527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중국 역시 지난 10년간 140조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붓는 등 주요 경쟁국들이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 지원에 나서는 반면, 한국의 지원책은 저금리 대출과 세액공제 등 간접 지원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액공제는 기업이 이익을 내야만 혜택을 볼 수 있는 만큼, 직접적인 현금 보조금 지급이 더 효과적"이라고 토로했다.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제 예외 적용'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숙제다.
반도체 산업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불가피하지만, 현행 근로시간 규제로는 탄력적 대응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도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핵심 개발자들이 연장 근무를 더 하고 싶어도 주52시간제 규제로 인해 개발 일정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는 이미 반도체 R&D 인력의 특별연장근로 허용 단위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기에 추가 예외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보다 유연한 근로 환경 조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현재 반도체특별법은 주52시간제 예외 규정을 둘러싼 여야 이견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해당 내용을 제외한 채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상태다.
◇AI 100조 투자로 G3 도약...'실행력·지속성' 담보가 관건=AI 산업 육성에 대한 이재명 정부 구상은 더욱 야심차다. '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어 AI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국가 주도의 전방위적 투자를 통해 AI 인프라, 서비스, 인재 양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주요 공약으로는 △100조원 규모 민관 합작 펀드 조성 및 이를 통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개 확보 △전국 단위 AI 데이터센터 구축 △AI 신경망처리장치(NPU) 국산화 개발 지원 △국민 누구나 생성형 AI를 무료로 이용하는 '모두의 AI' 프로젝트 실시 △AI 단과대학 설립, AI 병역특례 제도 도입, 한국형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강화 등을 통한 전문 인재 육성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를 모델로 한 'K-미스트랄' 프로젝트 추진 등이 포함됐다. 공공데이터 전면 개방, 방송사 보유 멀티모달 콘텐츠 구매 등을 통해 민간 기업 AI 기술 실증과 사업화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적극적인 투자 계획과 정책 방향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고성능 인프라 접근성 확대와 데이터 개방 등은 국내 AI 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높은 클라우드 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AI 서비스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실화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안정적인 재원 조달 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TV 토론 등에서 "100조원이라는 숫자에 비해 실제 필요한 예산은 많지 않으며, 정부의 재정 구조 조정과 수입 증가분으로 충분히 충당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으나, 세부 예산 편성 방식이나 사업별 우선순위 등 구체적인 로드맵은 차기 정부 출범 이후에나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접근"이라면서도 "정책 성공 관건은 속도감과 지속성이며, 민간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현장 중심의 실행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