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 ‘통장묶기 즉시 해제’ 도입으로 범죄시도 79% 감소
금융당국 “다수 민원 알아, 은행과 방법 논의”

[사진=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생성 이미지]

[아시아에이=김충현 기자] ‘통장묶기’ 피싱이 최근 ‘복수 대행’ 형태로 진화하며 서민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케이뱅크의 즉시 해제 제도 도입 이후에도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통장묶기, 혹은 핑돈(Finger Money)은 누군가 수십만원의 소액을 특정계좌로 보낸 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이라고 은행에 신고해 통장 계좌를 동결시키는 수법이다. 이렇게 통장이 묶이면 입·출금이 어려워져 자영업자의 경우 큰 타격을 입는다.

지난해 8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협박범들이 ‘계좌를 풀어주겠다’면서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 송금을 요구했다. 협박범들은 돈만 챙기고 연락을 끊었다. 개정안 시행 이후에는 협박 메시지 등을 제출해 소명하면 곧바로 통장묶기가 해제됐다.

온라인상에는 ‘복수대행’을 표방하는 통장묶기 대행 광고가 넘쳐난다. [사진=인터넷 페이지 캡쳐]
온라인상에는 ‘복수대행’을 표방하는 통장묶기 대행 광고가 넘쳐난다. [사진=인터넷 페이지 캡쳐]

하지만 1년 지난 현재도 여전히 통장묶기가 성행하고 있다. 법 개정 이후 ‘복수대행’으로 수법이 진화했다. 온라인상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경쟁업체나 특정인의 통장을 묶어주겠다는 광고가 넘쳐난다. 

이들은 비트코인으로 사례비를 받고, 특정인의 계좌로 소액을 송금한 뒤 신고만 한다. 그러나 이제는 통장이 묶인 상대방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다. 소명을 통해 통장이 금방 풀리기 때문이다.

주로 원한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통장묶기가 성행하고 있다. 또한 서로 경쟁상대 있는 업체가 일을 못 하게 통장을 묶기도 한다. 통장이 묶인 자영업자는 카드값과 공과금, 대출 이자 등이 연체되고 신용등급이 떨어져 치명타를 입는다.

통장묶기 피해자들이 여전히 넘쳐나지만 시중은행들은 두 손을 놓고 있다. 실제로 통장묶기 피해자가 은행 콜센터에 연락해 해제를 요구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듣는 경우가 많다.

개선책은 이미 나왔다. 케이뱅크가 지난해 금융권에서 처음 도입한 ‘통장묶기 즉시 해제’ 제도이다. 해당 제도를 도입하기 전인 지난 2023년에는 케이뱅크의 사기 이용계좌 건수가 1299건이었지만, 제도를 도입한 지난해에는 276건으로 통장묶기 시도가 79% 감소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해당 제도 도입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공식적인 이의제기를 거쳐 지급정지를 해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애매한 부분도 있다. 보이스피싱 등과 연루돼 지급 정지 건수는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급 정지된 건수는 △2023년 2만7652개 △지난해 3만2409개 등으로 크게 늘고 있다.

통장묶기 피해를 입었다고 이의제기를 한 이가 보이스피싱 연루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계좌를 확인해봤더니 불법 토토사이트 등과 연루된 사례도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인 경우, 은행 창구를 직접 방문하는 게 좋다. 은행이 송금자에게 연락해 사실 확인이 되면 당일에 바로 통장을 풀어준다. 문제는 송금자에게 연락이 안 될 경우다. 이때 은행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한다. 피해자는 시간만 소모하다가 벼랑 끝으로 몰린다.

피해자 구제에 힘을 쓰고 있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원한이 있는 상대나 경쟁업체를 골탕 먹이기 위해 통장묶기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은행의 대응이 제각각이라 피해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은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객관적 자료로 소명하기’를 넘어 은행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면서 “관련 민원이 많아, 은행들과 논의하려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아시아에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