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비 부담 제거로 초기 분양가 절반 수준 가능
지분적립형 주택으로 청년·신혼부부 주거 사다리 복원
공공택지와 결합할 때 효과 극대화
투기 억제와 실수요자 보호를 동시에 실현
법제화·제도화로 안정적 공급 구조 정착 필요

[아시아에이=김한수 기자] 서울 집값을 실질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토지 가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주택 가격에서 건축비는 일정 부분 예측 가능하지만, 토지비는 시장 상황과 투기적 수요에 따라 급등락하며 전체 가격을 왜곡시킨다.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분양되는 아파트의 분양가 가운데 절반 이상은 토지비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무주택 서민과 중산층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돌아온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과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적 해법으로, 주택 소유의 문턱을 낮추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꼽힌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토지를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입주자는 건축비만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를 적용하면 초기 분양가는 기존 시세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예컨대 8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도 토지임대부 형태라면 3억~4억 원대에 공급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가격 인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무주택 중산층이 대출 없이도 저축만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를 국가가 계속 소유하기 때문에 투기적 전매와 시세차익 실현이 어렵고, 장기적으로도 주거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공공이 땅을 소유하는 만큼, 가격 통제력이 유지되고, 투기적 수요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서민과 청년의 주거 사다리를 복원한다. 입주자가 초기 분양가의 20~30% 정도만 부담하고 입주해 생활을 시작한 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남은 지분을 조금씩 사들이는 방식이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이렇게 되면 청년층·신혼부부·저소득층도 당장의 큰 대출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한 소유권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노력하면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가 주택 소유인데, 지분적립형 주택은 바로 이 벽을 낮춰주는 제도적 장치다.

이 두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공택지와 결합해야 한다. 민간 토지 위에서 토지임대부나 지분적립형 방식을 도입하면, 토지비가 여전히 분양가에 반영되어 가격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다. 반면 공공택지를 활용하면 토지비를 완전히 배제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어, 제도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따라서 국가가 확보한 택지를 민간 매각이 아니라 토지임대부·지분적립형 방식으로 적극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공공택지는 반드시 공공분양”이라는 원칙과 맞물려야 하는 이유다.

토지임대부와 지분적립형 주택은 투기 억제 효과도 탁월하다. 토지임대부는 토지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돼 있어 단기 매매를 통한 투기 수요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분적립형 역시 초기 지분만으로 전체 주택을 되팔 수 없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투기 목적의 진입을 막는다. 결국 이 두 제도는 실수요자만 접근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주택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해외 사례도 시사점을 준다. 싱가포르는 HDB(주택개발청) 공공주택을 통해 국민의 80% 이상을 자가 소유로 이끌었는데, 토지를 국가가 장기 보유하면서 건축비만 부담하도록 설계했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유사한 지분공유형(Shared Ownership) 모델이 있어 초기 부담을 낮추고 점진적으로 지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토지임대부나 지분적립형 주택을 공급했으나, 규모가 작고 정책 연속성이 부족해 사회적 파급력이 미미했다.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법제화하고, 연간 일정 물량 이상을 반드시 이 방식으로 공급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정착을 위해서는 보완 과제도 많다. 첫째, 분양가 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원가 공개와 건축비 중심의 분양가 상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입주자격을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만 한정해 정책 취지를 살려야 한다.

셋째, 지분적립형 주택의 경우 입주자가 소득에 맞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장기 저리 대출 지원, 세제 혜택 같은 보조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 임대료를 최소화하고, 임대 조건을 장기간(예: 50년 이상) 보장해야만 실질적 안정성이 확보된다.

결국 토지임대부·지분적립형 분양주택 확대는 서울 집값을 무주택 중산층이 대출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핵심 열쇠다. 주거는 투기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기반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공공이 토지 소유권을 유지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제도가 제도적으로 정착될 때만이, 서울의 집값은 거품을 벗고 중산층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현실적 가격대로 돌아갈 것이다.

저작권자 © 아시아에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