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공급과 내수 포화가 부른 가격 인하 경쟁
보조금 축소 이후, 출혈적 할인 전쟁 가속화
기업 수익성 악화와 R&D 투자 위축 현실화
신흥시장에서 한국차 가격 압박 직면
품질·안전·서비스로 합리적 가성비 전략 모색

[아시아에이=남기성 기자] 중국 전기차 산업은 세계 최대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그 화려한 성과 뒤에는 치열한 가격 전쟁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잇따라 가격을 인하하고 있으며,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부 모델은 사실상 원가 이하로 팔리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의 구매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 수익성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비합리적 가격 경쟁을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시장의 무질서는 산업 전반의 신뢰를 위협하고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는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가격 전쟁의 본질적 원인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첫째, 내수 시장의 성숙이다. 대도시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50%를 넘어선 상황에서 신규 수요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둘째, 과잉 공급이다. 국영 대기업부터 신생 스타트업까지 수십 개 업체가 무분별하게 시장에 진입하면서 공급량이 수요를 크게 초과했다.

셋째, 정부 보조금 축소다. 한동안 전기차 붐을 떠받쳤던 보조금 제도가 축소되자 기업들은 소비자 유인을 위해 무리한 가격 인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결합하면서 가격 전쟁은 일상화되었고, 이는 결국 산업 건전성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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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파는 이미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소 규모 전기차 업체들은 줄줄이 파산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으며, 생존한 기업들도 마진이 줄어 연구개발 투자에 제약을 받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판매량 확대라는 성과를 거두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품질 관리가 약화되고 기술 혁신이 지체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전기차 산업은 빠른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가 경쟁에 갇힌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위기다. 중국산 초저가 전기차가 동남아, 남미, 중동 등 신흥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현대차와 기아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수십 퍼센트 낮은 중국산 전기차에 눈길을 돌리고 있고, 이는 한국차의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차의 존재감이 확대될수록 한국차가 맞닥뜨릴 경쟁 압력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기회 요인도 존재한다. 중국 기업들의 무리한 가격 인하는 결국 체력 고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고, 브랜드 신뢰 역시 훼손된다. 이 틈에서 한국차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합리적 가성비다. 여기서 말하는 가성비는 단순히 가격이 저렴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격 대비 품질, 안전성, 서비스, 친환경성 등 전체 가치를 고려한 종합적인 경쟁력을 뜻한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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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가 합리적 가성비 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체적 과제가 있다. 우선, 품질과 내구성을 강조해야 한다. 단기적 가격 혜택보다 장기적인 유지비 절감과 안정적 성능이 소비자에게 더 큰 가치를 준다는 점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서비스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보증 제도, 촘촘한 A/S 네트워크, 신속한 부품 공급 등은 중국차가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다음, 글로벌 친환경 인증과 안전성 확보가 필요하다. 주요 수출 시장인 유럽과 북미에서는 환경 규제와 안전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이를 충족하는 것이 곧 브랜드 신뢰로 이어진다. 넷째, 현지 맞춤형 전략도 중요하다. 동남아에서는 내구성이 강한 소형 SUV, 남미에서는 충전 인프라 부족을 고려한 하이브리드 모델, 중동에서는 고온 환경에 최적화된 배터리 시스템 등이 요구된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수출 금융, 통상 협력, 무역 장벽 대응 등에서 기업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 전기차의 수출 확대가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산업 정책이 요구된다. 한국 배터리 기업과 ICT 기업이 협업해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장기적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다.

중국의 가격 전쟁은 한국에 분명한 도전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순히 싼 차가 아니다. 장기간 안심하고 탈 수 있는 차, 유지비까지 고려했을 때 합리적인 차, 안전성과 서비스까지 담보된 차를 원한다. 한국차가 바로 그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킨다면,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강력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중국 전기차의 가격 전쟁은 산업 구조의 불안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차가 자신만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시험대다. 한국이 가격 경쟁을 넘어 품질과 신뢰, 서비스와 친환경 가치를 앞세운다면,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싸구려 대량 생산이 아닌 ‘믿을 수 있는 합리적 가성비’라는 포지션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차의 생존 전략이자 글로벌 도약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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