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의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의 조감도 [사진=HD현대중공업]

[아시아에이=김호성 기자] 최근 조선업계를 이끌고 있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7조8000억원의 사업비가 걸린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때문이다.

특히 '절친'으로 알려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양팔을 걷어붙이면서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KDDX는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은 가운데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수행할 기업을 선정하는 입찰이 올해 하반기 진행된다. 선정을 앞두고 기밀 유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갈등은 지난 2012년 부터 2015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해군본부 함정기술처에서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만든 KDDX 보고서 등 12건을 불법 취득해 회사 내부망이 공유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사건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제작한 KDDX 개념설계도(3급 군사기밀) 2000페이지 분량이 포함됐고 HD현대중공업은 이 개념설계도를 KDDX 입찰참가를 위한 사업제안서 작성 등에 활용했다.

이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지난 2023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HD현대중공업은 1심 결과가 나온 2022년 1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모든 방산 사업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보안 감점 1.8점을 페널티로 적용받게 됐다.

이 결과로 방사청은 총 6척의 신형 호위함 건조사업 중 5, 6번함 건조를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에 한화오션을 선정했다.

선정 이후에도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와 국정감사에도 등장하면서 이 갈등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됐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방사청, HD현대중공업 행정지도 의결...KDDX 입찰 참여 가능

방위사업청은 지난 2월 진행한 계약심의위원회에서 '대표·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 즉 형사처벌로 확인되지 않는다며 행정지도를 의결했다.

직접적으로 임원이 지시했다는 표현이 판결문에 없어 임원의 군사기밀 탈취·유포 정황을 발견할 수 없다는 얘기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기술 유출이 개인의 일탈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의 KDDX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사청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가계약법 제27조 1항 1호 및 4호상 계약 이행시 설계서와 다른 부정 시공, 금전적 손해 발생 등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제척 기간을 지남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안보 분야 전문가인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이번 방사청의 행정지도 의결에 대해 "이번 사태에 추가적인 제재보다는 행정지도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본다며, "이제 정부나 방사청에서 번복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경찰 조사나 법원에서 판결을 할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최기일 교수는 "앞으로 이런 사태에 대해 재발 방지가 안 되도록 사전적 예방 시스템으로 법적 제도를 좀 보완해야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사례가 만약 또 다른 방산업체에서 나온다면 이런 사각지대나 허점을 이용해 중대한 위법 행위나, 도면 유출 및 국가 기밀이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행정처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사례를 통해서 확실한 사전적 예방 제도뿐만 아니라 처벌·양벌 기준을 제대로 마련해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된다라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보고서 유출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고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임원 개입 경찰 고발

한화오션은 지난 4일 KDDX와 관련된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정황을 수사하고 처벌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제출했다.

이번 고발은 방사청이 지난달 27일 HD현대중공업의 KDDX 사업 입찰을 제한하지 않는 행정지도를 의결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이에 한화오션은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입장 설명회를 열고 HD현대중공업 고발 배경에 대해 "사전에 임원과 고위직 간에 협의가 됐기 때문에 군사 기능 열람을 위한 시도 자체가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고발조치에 대해 한화오션은 "방위사업청이 행정지도 결론을 내린 것에 반박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이익 다툼으로 보일 소지가 있지만, 사업 수주와 연결해서 고발을 (입찰 전에) 해야 한다든지 이익적인 측면에서 고발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방사청은 회사의 대표나 임원이 청렴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이 됐을 때만 '부정당 업체'로 지정해 입찰에서 배제할 수 있다. 이에 경찰 고발을 통해 임원급 개입 여부가 밝혀지면, 방사청이 다시 심의에 들어갈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임원 개입 여부는 경찰 조사를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전했다.

'2023 부산국제조선해양대제전'에서 참가자들이 HD현대 부스에서 한국형 구축함(KDDX) 등 차세대 함정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스1]
'2023 부산국제조선해양대제전'에서 참가자들이 HD현대 부스에서 한국형 구축함(KDDX) 등 차세대 함정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스1]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경찰 고발..."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경쟁사를 경찰에 고발한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일이다.

사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HD현대중공업의 입찰에 참가하는데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는다.

일단 수사가 연말 전까지 결론을 내기 쉽지 않고 수사결과가 나와 방사청 재심의로 입찰 제한을 하더라고 HD현대중공업이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낼 수 있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의 억지 주장에 불과하며, 임원 개입 여부 등 문제 제기한 사안은 이미 사법부의 판결과 방사청의 두 차례에 걸친 심도 있는 심의를 통해 종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또 "발표 내용은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일방적으로 짜깁기하여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화오션의 고발 조치는 "KDDX 입찰을 겨루는 상황에서 HD현대중공업의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이 양사의 갈등 배경에 대해 최기일 교수는 "우리 K-방산에 기업들이 원팀이 돼야 되는데 지금 상황은 굉장히 우려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이다"고 말하며, "이번 사건 만큼은 함정 사업의 특수성이나 함정 산업에 대한 특성을 고려해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자 내지는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조속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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