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 전망 2026] ③ 전고체 상용화가 여는 2030 전기차 산업 대전환
전고체 상용화, 전기차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전환점 주행거리·충전속도 개선이 플랫폼 설계를 근본부터 변화 소재·부품 공급망이 전고체 시대에 맞춰 새롭게 재편 충전 인프라·재활용 산업까지 규칙이 달라지는 변곡점 2032년 이후 승자는 기술·공정·고객·설비 총합력이 결정
[아시아에이=남기성 기자] 전고체 배터리는 2029~2032년을 기점으로 전기차 시장의 규칙을 다시 쓰는 기술로 평가된다. 2026년 현재 전고체는 아직 본격 양산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세계 배터리·자동차 기업들은 이미 전고체 기반의 사업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작성하고 있다. 전고체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처럼 부분 개선형 기술이 아니라, 전기차 산업 전체에 작동하는 기초 구조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기술이다.
주행거리·충전속도·안전성·내구성이라는 핵심 지표를 동시에 혁신하는 최초의 배터리 기술이라는 점에서, 전고체가 등장하면 자동차·부품·소재·공장·충전 인프라·정책·금융·재활용까지 모든 가치사슬에서 변화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전고체의 가장 큰 변화는 ‘무게·부피 혁명’이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는 셀·모듈·팩 구조가 복잡하고 냉각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해 배터리 무게가 전체 차량 무게의 25~35%에 달했다. 전고체는 리튬금속 음극과 고체전해질을 활용하면서 구조가 간소화되고, 셀·모듈·팩 통합이 가능해져 무게가 크게 줄어든다.
배터리가 80~200kg 가벼워지면 전기차의 효율은 10~15% 개선되고, 이는 주행거리 증가 효과로 이어진다. 결국 전고체 전기차는 단순히 “멀리 가는 전기차”가 아니라 “가볍고 효율적인 차체를 가진 전기차”로 바뀌며, 플랫폼 전체의 패러다임이 변경된다.
주행거리 개선 역시 구조를 바꾸는 중심 동력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금속 음극을 통해 기존 대비 30~50% 높은 에너지밀도를 달성할 수 있어 800~1,200km 주행이 가능하다. 이는 전기차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을 해소하는 결정적 요소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700~900km 주행거리를 넘어서는 구조가 현실화되며, ‘장거리 주행의 불안’이 사라지면 전기차 시장은 지금과 전혀 다른 확산 곡선을 그리게 된다. 현재의 전기차 구매 장벽 1위가 ‘충전 불편’이기 때문에, 전고체의 등장은 전기차의 대중화를 사실상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이라고 볼 수 있다.
충전속도 또한 전기차 시장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전고체는 이론적으로 10~15분 안에 완전 충전이 가능한 전기화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환언하면 충전소의 개념 자체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 전기차 충전은 “장시간 점유형 인프라”를 기반으로 했고, 충전소의 핵심 가치는 넓은 부지·대기 공간·급속 충전기 수량이었다.
하지만 전고체 시대에는 “회전율 기반 인프라”로 전환된다. 충전소는 더 작은 부지에서 더 많은 차량을 처리할 수 있고, 도심형 소형 충전소나 이동형 충전 서비스도 급속도로 확대될 수 있다. 완성차 기업들이 현재 직접 구축하고 있는 초급속 충전망도 전고체 시대에 재설계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충전 인프라 산업에서 투자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며, 충전소 운영과 수익 모델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전고체의 등장으로 차량 설계도 근본적으로 변한다. 기존 BEV 플랫폼은 ‘배터리 스케이트보드 구조’에 의존해 왔다. 배터리가 차체 바닥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여서, 차체 강성 확보에는 유리했지만 실내 공간·차체 디자인·차량 구조적 유연성 측면에서는 제약이 많았다. 전고체 시대에는 배터리팩 크기를 줄이거나 두께를 낮출 수 있고, 패키징 구조도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차량의 실내 거주성은 더 넓어지고, 차체 설계 자유도가 커지며, 상용·픽업·고성능 스포츠 전기차 등 다양한 차종에서 전고체 기반 전동화가 가능해진다. 현대차·도요타·폭스바겐·메르세데스 등 완성차 업체들이 2026년부터 차세대 전고체 플랫폼 개발을 본격화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고체 상용화는 배터리 소재 생태계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기존 리튬이온은 양극(NCM·LFP), 음극(흑연·실리콘), 전해질(액체), 분리막 중심 구도였다. 그러나 전고체는 고체전해질(황화물·산화물·고분자), 리튬금속·실리콘 음극재, 단결정 양극재 등 완전히 다른 소재 시장을 열어젖힌다.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은 고이온전도도가 강점이지만 수분에 민감해 제조 난관이 크고, 산화물계는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고온 소결이 필수다. 이처럼 소재 특성에 따라 공정·설비·품질 기준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에, 소재 기업 입장에서는 “전고체 시대에 적응하느냐, 도태되느냐”가 걸린 생존의 문제다.
한국 소재 기업들은 실리콘 음극재·황화물계 전해질·고체전해질 합성·단결정 양극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전고체 소재 생태계의 핵심 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공장 설계 역시 전고체에 맞춰 전면 재편된다. 기존 전기차 배터리는 전극 슬러리를 만들고 이를 코팅·건조·조립하는 습식 공정에 기반했다. 반면 전고체는 건식 전극, 고압 압착, 고온 소결, 고체전해질 합성 등 완전히 새로운 공정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 공장의 일부 라인 개편이 아니라 아예 공장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전고체 제조는 초기 투자비(CAPEX)가 크며, 공정 안정성이 낮아 장기간 수율 개선 단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삼성SDI처럼 이미 파일럿 라인을 돌리고 있는 기업이 가장 앞서 있고, LG엔솔과 SK온은 각각 산화물계·황화물계에 맞춘 공정 설계를 병행하고 있다.
전고체 상용화는 충전 인프라뿐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전기차의 충전 시간이 단축되면 전력망의 단기 부하가 증가할 수 있어, 국가 전력망 차원에서도 고출력 충전에 대비한 인프라 강화가 필요하다.
동시에 전고체 배터리는 사이클 수명이 길고 내구성이 우수해 ESS(에너지저장장치) 분야에서도 응용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미국·유럽의 전력망에서 ESS 수요가 폭발하는 가운데, 전고체 ESS는 안전성과 수명 면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재활용 시장의 구조도 바꾼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극·전해질·분리막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재활용 공정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전고체는 고체전해질 기반으로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지며, 황화물·산화물 전해질 회수 기술 등 신규 산업이 등장하면서 재활용 시장이 높은 기술 장벽을 가진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한다. 전고체 시대에는 ‘배터리를 만들고 파는 기업’보다 ‘배터리 회수·재활용·재제조 기업’의 가치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기술 경쟁 측면에서, 전고체 시대의 승자는 단순히 기술 우위를 가진 기업이 아니라, 양산 공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고객 플랫폼과 결합할 수 있는 기업이다. 전고체는 기술보다 공정이 더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면적 전극 제조, 고체전해질 대량 합성, 압착·소결 공정 자동화, 고체전해질-전극 계면 최적화 등 공정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해 수율을 확보한 기업만이 상용화 레이스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
삼성SDI는 이 부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LG엔솔은 산화물계의 내구성과 고객 포트폴리오로 중장기 경쟁력이 있으며, SK온은 속도전과 현대차 플랫폼 기반 전략으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결국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산업의 ‘제2막’을 여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자동차의 설계, 충전, 소재, 생산, 재활용, 정책, 투자 사이트까지 산업 전반의 구조가 바뀐다.
2029~2032년은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자리 잡는 시기이며, 이때의 승자는 단순히 기술적 우월성뿐 아니라 공정·고객·설비·공급망을 통합적으로 확보한 기업이 될 것이다. 한국 3사는 이 핵심 지점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기업들로, 전고체 시대의 글로벌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