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 전망 2026] ② 한국 3사 전고체 기술력 비교..삼성SDI·LG엔솔·SK온의 전략은 왜 갈라졌나
한국 3사, 전고체 전략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 삼성SDI는 계면 안정·공정 완성도로 선두권 유지 LG엔솔은 산화물계 장수명 전고체로 차별화 노선 구축 SK온은 ARPA-E 기반 황화물계 추격으로 속도전 강화 2030년 전후 상용화 경쟁, 기술 깊이와 공정 확보가 승부처
[아시아에이=남기성 기자] 전고체 배터리 경쟁이 본격화되는 2026년, 한국 3사는 모두 전고체 기술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술 계열의 선택부터 공정 투자, 고객사 전략, 리스크 관리 방식까지 기업마다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2029~2032년 전고체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할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공정·설비·소재·고객사가 통째로 재편되는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3사의 현재 전략은 향후 10년간 기업의 성장 궤도를 사실상 결정하는 초대형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SDI는 전고체 기술 분야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실체적인 진전을 이뤄낸 기업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연구개발(R&D) 성과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양산 공정까지 검증 단계에 들어간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삼성SDI가 강점을 보이는 황화물계 전고체는 전고체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이온전도도를 확보할 수 있어 고출력·고에너지밀도 특성이 우수하다.
동시에 황화물계의 최대 난제인 계면저항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계면 안정화 기술(Interfacial Stability Engineering)'을 꾸준히 개발해왔으며, 계면에 특수 코팅을 적용하거나 고체·전극의 압착 방식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반복 충·방전에서도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구축해왔다.
삼성SDI는 무엇보다 양산 공정에서 타사 대비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공정과 완전히 달라 건식 전극, 고압 프레스, 소결 공정, 황화물계 전해질 합성 설비 등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다. 이런 공정은 설비 구축 기간만 최소 3~4년이 소요되며, 양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파일럿 라인에서 수백 차례의 반복 테스트가 요구된다.
삼성SDI는 2024년부터 이미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며 고체전해질 합성 공정, 대면적 전극 성형, 셀 스택 조립 공정을 실제 라인 수준에서 테스트하고 있다. 2027년 시제품 개발, 2029년 양산이라는 일정은 단순 발표가 아니라 기술과 설비에 기반한 ‘실행 가능한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삼성SDI를 “2030년 이전 전고체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기업”으로 평가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산화물계 전고체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산화물계 전해질은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며 내구성이 뛰어나 장기간 충·방전에도 성능 유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LG엔솔은 장수명·고안전성·고내구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자율주행·고성능 전기차 시장에서 매우 큰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산화물계는 제조 과정에서 고온 소결이 필요해 에너지 비용과 공정 난이도가 매우 높다. 또 세라믹 특성상 전극과의 계면저항이 커 빠른 충전과 고출력에서 불리할 수 있다. LG엔솔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면에 별도 코팅을 도입하거나 복합 구조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계면저항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전고체 적용 시 셀의 장기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LG엔솔의 전략은 단순히 기술 선택 차원을 넘어 고객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LG엔솔은 GM·현대차·스텔란티스 등 대규모 글로벌 OEM과 JV를 다수 구축하고 있으며, 이들 고객사는 화재 리스크 최소화·수명 안정성·공정 신뢰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LG엔솔의 산화물계 전고체는 안전성과 내구성 측면에서 이러한 고객 요구와 높은 합치율을 보인다. 2030년 전후 상용화는 빠른 일정은 아니지만, 전고체 시장이 초기 충전속도 경쟁에서 안전성·수명 경쟁으로 이동할 경우 LG엔솔의 전략은 중장기적으로 유리한 포지션이다.
SK온은 후발주자였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다. 특히 미국 에너지부 ARPA-E 프로젝트 참여 이후 SK온의 기술 속도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의 수분 민감성 완화 기술, 계면저항 감소 기술, 미세입자 기반 전해질 정제 기술 등에서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냈으며, 특히 셀 조립 과정에서 이온전도도를 개선하는 압착 공정은 SK온이 빠르게 실용화 단계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SK온의 가장 큰 강점은 '고객 기반의 확실성'이다. 현대차는 2025년 이후 차세대 플랫폼에서 전고체 적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고성능·고체 전해질 기반의 전기차 플랫폼을 2030년대 중반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차와의 기술적 연속성은 SK온이 전고체 시장에서 초기 고객을 확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이라는 의미다. 비록 상용화 일정은 2030~2031년이 유력하나, 고객과의 결속력은 기술 초기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다.
한국 3사가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이유는 각 회사의 기술적 유산과 시장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프리미엄 시장 중심의 전략을 유지해 고에너지밀도·고출력 특성을 극대화하는 황화물계에 집중했고, 연구 초기부터 계면 안정화 공정에 막대한 투자를 몰아넣었다.
LG엔솔은 다양한 OEM과의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산화물계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을 택했으며, 이는 글로벌 안전 규제가 강화되는 2030년 이후 시장에서 강력한 우위를 가질 수 있다. SK온은 비교적 늦게 전고체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시장 선점을 위해 속도전 전략을 택했고, ARPA-E 등 외부 기술 레버리지 활용으로 단기간 성능 격차를 좁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2026년 현재 한국 3사는 기술력 면에서 세계 전고체 시장 최상위권에 위치하며, 세 기업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고체 시장에서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SDI는 선도력, LG엔솔은 안정성, SK온은 협업·추격력을 무기로 삼는다.
결국 전고체 시대의 승자는 기술의 우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해질 계열 선택, 계면 안정성 수준, 공정 완성도, 고체전해질 합성 능력, 대면적 전극 제조 기술, 실제 양산 라인 구축 시점, OEM과의 협력 구조 등 복합적 요인이 시장의 흐름을 좌우한다.
2030년 전후로 전고체 배터리 시장이 본격 개막하면, 한국 3사는 각각 다른 위치에서 전고체 생태계의 핵심 역할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 시장은 단순히 ‘누가 먼저 만드느냐’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느냐’의 경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삼성SDI는 가장 선도적인 위치에 서 있고, LG엔솔은 고객 기반과 안전성에서 강하며, SK온은 추격 속도와 고객 결속력이 강점이다. 결국 2026년은 한국 3사가 전고체 경쟁에서 확실한 세계 최정상권 위치를 공고히 하는 해이며, 이들의 선택은 향후 10년, 전기차·배터리 산업의 판도를 결정할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