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⑧ 정의선 회장의 글로벌 확장 전략과 한국 산업에 주는 부담

정의선, “해외 확장·국내 투자 병행” 메시지..대외 현실과 국가 요구 교차 미국·유럽 중심 현지화 가속..한국은 기술·R&D 중심으로 전환 압박 아시아에이 분석, 현지화율 70% 시 국내 부품 수출 25% 감소 가능성 정부는 국내 일자리·지역경제 우려, 기업은 대외 생존전략 강조 "불일치" 이익은 해외에서, 부담은 국내에 남는 구조.. ‘국가–기업 전략 정돈’ 필요

2025-11-17     김한수 기자

[아시아에이=김한수 기자]  대기업 총수들이 대통령과 마주 앉은 이번 간담회는 단순히 경제 현안을 점검하는 자리 이상이었다. 한국 제조업의 미래 축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가 어떤 역할을 나눠 갖게 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무대였다.

이런 가운데 시선을 모은 인물 중 하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었다. 그는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로 대한민국 경제 활력을 되살리겠다”는 약속을 내놓으며 국내 투자 의지를 분명히 했지만, 그 속에는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이 처한 현실과 구조적 제약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전략적 메시지가 함께 실려 있었다.

정의선 회장은 간담회에서 국내 공장 신설, 차세대 모빌리티 투자 확대, 수소·전동화 중심 산업 재편 등 굵직한 계획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가 전달하는 진짜 의미는 국내 투자 그 자체가 아니라 “국내와 해외 투자를 동시에 강화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압력”에 대한 인정이었다.

이 표는 간담회에서 정의선 회장이 밝힌 국내·해외 전략의 핵심 발언을 산업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발언 자체보다 그 뒤에 숨은 구조적 의미를 정리해 국내 제조업 전환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이는 그가 최근 수년간 여러 자리에서 언급해 온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현대차의 글로벌 생산 구조는 이미 미국·유럽·인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이제는 완성차뿐 아니라 배터리·전장·소재 공급망까지 해외 중심 체계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이 더 이상 생산의 중심거점으로만 기능하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며 재계에 책임을 강조했다. 그가 국내 제조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은, 자동차와 반도체 같은 주력 산업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은 고용만 해도 직간접 31만 명에 이르고, 울산·광주·충남 등 지역경제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 축이다. 대통령이 재계에 요청한 메시지는 정치적 수사나 당부 수준을 넘어서 국가경제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한 절박한 경고에 가깝다.

이 표는 아시아에이 데이터분석팀이 산업연관·고용탄성 모형을 활용해 현지화율 70% 시 국내 산업이 받을 충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이다. 부품·완성차·고용·지역경제까지 하방 압력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수축 위험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부의 요구만으로 기업의 글로벌 전략을 되돌릴 수는 없다. 글로벌 공급망의 무게중심이 이미 이동했고, 현대차를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모두 ‘현지 생산 없이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 앞에 서 있다.

IRA 보조금 규제, 유럽의 탄소국경세(CBAM), 중국의 생산·소비 정책까지 겹치면서 “수출 중심 한국 모델”은 구조적으로 한계에 다가섰다. 정의선 회장이 “수출과 현지 생산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것은 결국 한국형 수출 제조업 모델이 더 이상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장 큰 우려는 한국 산업이 감당해야 할 구조적 부담이다. 아시아에이 데이터분석팀이 산업연관·고용탄성·구조적 수축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분석한 결과, 북미 현지화율이 70%에 도달하면 국내 부품 수출은 약 25% 감소할 수 있으며, 완성차 수출도 20% 안팎의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내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총 125조 2000억 원을 투입한다. 최근 5년(89조 1000억 원)보다 40% 넘게 늘린 사상 최대 투자로, AI·로봇 등 미래 신사업과 모빌리티 연구개발(R&D), 국내 생산설비 효율화 3대 분야에 집중 투입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 협상 후속 관련 민관 합동회의에서 이 같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기아의 1차 협력사가 올해 부담한 대미(對美) 관세 비용 전액을 현대차그룹이 부담하는 상생안과, 국내 주요 생산거점을 확충하는 방안도 담겼다. 사진=뉴스1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축소되는 ‘체질적 수축(Structural Contraction)’의 신호다. 울산·광주·충남 등 자동차 산업 기반 지역은 생산 위축→고용 감소→지역 소비 둔화→세수 감소로 이어지는 ‘4단계 하방 충격’을 동시에 맞을 위험이 높다.

정의선 회장의 발언은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누구보다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는 국내 공장을 단순히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기술·플랫폼·연구개발의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즉, 해외가 대량생산을 담당한다면 국내는 미래차 기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마트팩토리, 차세대 전기전자 아키텍처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 조정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 모델 자체의 체질을 바꾸는 ‘두뇌 중심’ 전략이다. 이는 국내 자동차 생산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줄이겠다는 의도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지난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자주 보자"고 말했다. 이에 기업인들은 "(만남을) 정례화할까요"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그래도 좋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전달했다. 합동회의는 한미 관세협상 타결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이 참석했다. 사진=뉴스1

하지만 높은 기술 경쟁력과 고부가가치 기반으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사이 발생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한 국가적 관리가 필수적이다. 특히 중소 협력업체들은 해외 이전이나 기술 전환을 즉각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 충격을 가장 먼저 받게 된다.

현지화율이 높아질수록 해외업체가 공급망을 대체하고, 국내 협력사는 생산량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구조조정 압력을 겪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완충하지 못하면 산업의 하층부가 무너지면서 전체 생태계가 동반 약화될 가능성도 크다.

정부 역시 국내 제조업 기반의 유지와 산업 생태계 재편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규제 완화, 세제 지원, 인력 재교육, 전기차·전장 기술 전환 펀드 등 정책적 지원책이 마련되더라도, 산업 구조의 해외이동 속도를 완전히 늦추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의 글로벌 전략과 국가의 산업 전략을 ‘정렬(alignment)’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국내 투자 확대”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R&D·기술개발·차세대 인력 양성·지역경제 회복력 강화 등 구조적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총수 간담회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대차의 글로벌 확장 전략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필연이지만, 그로 인한 부담과 위험은 결국 한국 산업이 감당하게 된다. 정의선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고, 이재명 정부는 국내 제조업의 기반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강조했다. 이 두 메시지가 충돌하지 않고 조율될 때만 한국 자동차 산업은 다음 10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제조업은 지금 매우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글로벌 확장 속에서 국내 기반을 어떻게 유지할지, 해외에서 발생한 이익이 어떻게 국내 산업으로 환류될지, 기술 중심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기업의 전략과 국가의 산업정책이 따로 움직이면 균형은 무너지고, 같이 움직이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번 간담회는 바로 그 방향성을 묻는 자리였고, 앞으로의 정책·투자·산업 전략은 이 물음에 대한 정교한 해답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