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글로벌 생산 재편] ⑦ 조지아·앨라배마·멕시코 생산벨트의 실체
현대차 북미 ‘슈퍼 벨트’ 형성 ..조지아·앨라배마·멕시코가 하나로 조지아 메타플랜트, 한국 기업 40여 곳 집결, ‘한국형 자동차 도시’ 탄생 멕시코는 북미의 숨은 엔진..저원가 전장·모듈 생산지로 급부상 국내 산업 공동화 경고..울산·광주·충남 지역 고용 2%씩 감소 전망 현지화는 ‘생존전략’..IRA·관세·물류비·정치 리스크 대응 위한 선택
[아시아에이=김한수 기자]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략은 단순한 양적 증설이 아니라, ‘생산-부품-기술’이 하나로 결합된 완전형 지역 공급망 생태계(Local Production Ecosystem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조지아주·앨라배마·멕시코 북부를 잇는 소위 ‘현대차 벨트(HMG Belt)’는 단순한 생산거점을 넘어, 글로벌 자동차 산업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자 IRA(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 이후 세계 공급망의 재편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미국 내 완성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이며 동시에 중국·유럽과의 공급망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제도 기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공개 또는 유출된 자료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북미 지역 전체 투자규모는 2027년까지 총 120억~150억 달러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일 기업 기준으로 미국 자동차 역사상 매우 드문 규모다.
조지아주 사바나에 건설 중인 현대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PA)는 연간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이 공장을 중심으로 약 40여 개의 국내 외 협력사가 클러스터 형태로 입주한다. 조지아주 산업 개발청(GDEcD)은 ‘현대차 프로젝트’를 “조지아 경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 투자”라고 표현했다.
앨라배마 공장은 북미 전략 모델의 핵심 생산기지로 재편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모델에 더해 하이브리드, 전기 구동 부품 일부가 이곳에서 생산되며, 인근 지역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공동 투자하는 대규모 배터리 셀 공장이 자리 잡는다.
효성첨단소재는 탄소섬유 복합소재 생산을 위한 라인을 구축해 전기차 경량화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 구조는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 ‘북미 자급형 공급망(Self-sufficient Supply Chain)’의 완성도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한편 멕시코 북부는 완성차가 아닌 부품·전장·배터리 하위 모듈의 생산 클러스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누에보레온·코아우일라·산루이스포토시와 같은 공업지대에서 생산된 부품들은 육로를 통해 앨라배마·조지아 공장으로 이동한다.
저렴한 인건비와 USMCA의 원산지 규정 충족이라는 이점을 동시에 가진 멕시코는 한국 부품업체에게 ‘세 번째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북부 지역 산업단지에는 현대모비스·평화산업·서진산업 등 중견 부품업체들이 이미 진출했고, 일부는 북미 OEM까지 고객사를 다변화하며 현지화율을 80%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공급망 재편은 세 가지 경제적 목표를 반영한다. 먼저 IRA 보조금 최적화다. 미국산 부품 비중이 60%를 넘으면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생산거점과 부품 공급망을 북미 중심으로 묶을수록 가격 경쟁력이 강화된다. 둘째는 물류 효율성 극대화다.
조지아 항만은 미국 남동부 물류의 핵심이며, 멕시코 북부 산업단지와 미국 남부 제조벨트는 도로·철도망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셋째는 정치 리스크 분산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환경에서, 중국산 배터리·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우호적인 산업 생태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판단이다.
하지만 북미 벨트 확장은 한국 경제에 복합적인 영향을 동시에 남긴다. 긍정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설비·기술 수출이 늘어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부정적으로는 국내 공장 역할이 떨어지고 국내 협력사의 해외 이탈이 늘어나면서 국가적 차원의 산업 공동화(deindustrialization) 우려가 현실화된다.
아시아에이 데이터분석팀이 구축한 산업연관–고용탄성 복합모형에 따르면, 북미 생산 비중이 70%에 이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의 생산유발효과는 약 22~24% 감소, 지역경제 부가가치는 평균 3.1%p 하락, 울산·광주·충남 등 자동차 집적 지대의 고용은 연평균 1.8~2.3%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지아·앨라배마·멕시코로의 공급망 이동은 ‘부품-완성차-R&D’가 동시에 해외로 향하는 첫 사례로, 단순한 생산기지 이동을 넘어 한국 산업의 구조적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과거에는 부품업체가 국내 생산을 통해 완성차에 납품했다면, 이제는 북미 현지 협력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며, 일정 부분 한국 기술·노하우가 현지에서 재구성되는 ‘기술 분산’까지 동반된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북미 중심 전략을 강화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IRA는 기술 경쟁이 아닌 제도 경쟁이기 때문이다. 생산지·부품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시장 진입 자체가 제한되며,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정의선 회장이 내부 회의에서 “IRA 이후 경쟁의 룰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 적응력”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정부도 현대차 투자를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하며, 적극적인 세금 혜택과 부지 제공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시아에이 데이터분석팀은 “조지아·앨라배마·멕시코 생산벨트가 단순한 지역 투자가 아니라, ‘공급망 전쟁’의 승부처로 기능하고 있다”며 “국내 산업은 이 흐름을 피할 수 없으며, 기술·R&D 기반의 고도화 및 정책적 완충장치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현대차의 세계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부담은 한국 산업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가 되고 있다. 기업의 글로벌 확장과 국가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지키는 균형 전략, 지금 한국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