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버틴 성장, 건설은 무너졌다...0.9% 성장의 속살

수출 12.6%↑ vs 건설 17.9%↓...내년 관세·반도체 변수에 불균형 우려

2025-10-27     김수빈 기자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7회 반도체 대전(SEDEX 2025)을 찾은 관람객이 삼성전자 부스에서 HBM4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 뉴스1]

[아시아에이=김수빈 기자] 올해 한국경제는 반도체가 버티고, 건설이 무너진 한 해였다.

27일 업계 및 한국은행의 10월 ‘경제상황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8월 전망치인 0.9% 안팎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수출과 소비가 경기의 하방을 막았지만, 건설투자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건설기성액은 전년 대비 17.9% 감소하며 뚜렷한 하락세를 이어갔다. 안전관리 강화로 대형 공사가 지연된 데다 분양시장 침체가 겹치면서 주거·토목 부문 모두 부진했다. 반면 민간소비는 주가 상승과 정부의 소비 진작 정책 효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수출은 반도체가 주도했다. 9월 통관수출액은 659억달러로 전년 대비 12.6% 증가했다. AI 서버용 D램과 고성능 메모리(HBM) 수출이 크게 늘면서 반도체 업황 회복세가 수출 증가율을 견인했다. 다만 철강·자동차 등 고율 관세 품목은 미국 시장에서 부진했다.

물가 흐름은 안정적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 근원물가는 2.0%로 나타났다. 환율 상승에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68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안정세를 보이면서 전체 물가 압력이 제한됐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하며 근원물가도 2% 수준으로 관리됐다.

고용시장은 견조했다. 올해 취업자 수는 약 17만 명 증가가 예상되고, 실업률은 2.5% 수준에 머물렀다. 건설업 고용은 줄었지만 숙박·음식점, 의료·복지업 등 서비스업 일자리가 이를 상쇄했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 흑자 덕분에 올해 990억달러 안팎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 회복과 국제유가 안정이 겹치며 서비스수지 적자(-21억달러) 폭도 줄었다.

소비자물가 및 근원물가 상승률(좌), 소비자물가 상승률 및 기여도(우) [사진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경제상황 평가’ 보고서 발췌]

문제는 내년이다. 한국은행은 내수 중심의 회복세가 이어지겠지만, 미국의 고율 관세와 글로벌 반도체 경기 둔화가 수출 증가세를 제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도체 수출은 이미 고점 수준에 이르러 추가 성장 여력이 제한적이며, 비(非)IT 품목은 관세 부담으로 둔화될 전망이다.

올해 성장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었다. 하지만 반도체가 빛나는 만큼 산업 내 불균형도 깊어졌다. 건설·제조업은 여전히 회복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내수의 체력은 여전히 약하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소비와 수출이 경기 하방을 막고 있지만, 산업 간 온도차가 크다”며 “관세와 환율, 글로벌 반도체 경기 둔화가 내년 성장 경로의 가장 큰 변수”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경제는 수치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불균형하다. 반도체의 호황 뒤에 남은 건설과 내수의 공백, 그 온도차가 내년 한국경제의 진짜 성적표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