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렌딩 서비스 논란] ⑥ 투명한 시장 거버넌스 구축이 신뢰 회복의 출발점

정보 비공개로 불신 키운 거래소 운영 실태 상장·수수료·리스크 관리까지 공시 의무화 시급 자산 구조·청산 내역 등 정기 공시로 시장 자정 유도 일본·싱가포르 등은 이미 공시 제도 정착 투명성 확보가 산업 신뢰와 생존의 핵심 기반

2025-10-06     최지연 기자

[아시아에이=최지연 기자] 빗썸 렌딩플러스 사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이 얼마나 불투명한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수천억 원 규모의 대여 거래가 단기간에 이뤄지고, 강제 청산 피해가 속출했지만, 투자자들은 거래소 내부에서 어떤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거래소의 담보 관리, 대여 규모, 청산 기준은 철저히 내부 시스템에만 의존했고, 외부 공개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투자자 보호’는 구호에 그쳤고, 결국 시장의 신뢰는 무너졌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거래소의 정보 공개와 공시 제도 의무화다. 지금까지 국내 주요 거래소들은 상장 심사 기준, 수수료 체계, 내부통제 절차, 마케팅 비용 집행 내역 등 핵심 운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거래소의 재무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 수준이 외부에서 검증되지 않으니, 투자자들은 거래소의 신뢰성을 브랜드 이미지나 외형 규모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투명한 환경이 결국 빗썸 사태와 같은 혼란을 초래했다.

이제는 거래소가 정기적으로 보유 자산 구조, 대여 상품 규모, 청산 비율, 담보 관리 내역을 공시하는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래소별로 매월 담보 유지율, 청산 발생 건수, 대여 한도 대비 실제 운용 규모를 공개하면, 투자자들은 거래소의 위험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또한 상장 과정에서의 이해상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상장위원회의 심사 기준과 심의 결과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 상장 과정의 불투명성은 특정 프로젝트와의 유착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거래소 전반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투명한 공시 제도는 단순히 투자자 보호 차원을 넘어 산업의 자정 능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거래소들이 스스로 위험 지표를 관리하고 외부에 공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과도한 레버리지 상품이나 무리한 대여 서비스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동시에 시장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거래소를 평가하게 되고, 불투명한 구조를 가진 사업자는 경쟁에서 도태된다. 결국 투명성은 규제가 아니라 시장 생태계의 ‘정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은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정착되어 있다. 일본은 2017년 코인체크 해킹 사건 이후, 금융청(FSA)이 거래소 공시 의무를 대폭 강화했다. 거래소는 분기마다 보유 자산, 거래량, 고객 예치금 규모, 정보보안 관리 현황을 보고해야 하고, 이를 금융청이 직접 검증한다.

이미지=뉴스1

싱가포르 역시 금융관리청(MAS)을 중심으로 ‘투자자 공시 및 리스크 보고 체계’를 구축해, 거래소의 자산 건전성·레버리지 운용 현황을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거래소가 단순한 민간 플랫폼이 아닌, 사실상 금융기관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 위에서 만들어졌다.

한국도 더 이상 예외일 수 없다. 국내 거래소의 대부분은 자율규제 협회인 DAXA에 가입해 있지만, DAXA의 정보공시 기준은 회원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 실제로 거래소 간 공시 항목과 주기는 제각각이며, 일부 거래소는 기본적인 자산 현황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이를 방치한다면, 투자자 신뢰는 회복될 수 없다. 이제는 협회 중심의 자율 공시에서 벗어나, 법적 의무에 기반한 ‘거래소 투명성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투명한 시장 거버넌스는 단기적으로는 거래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 전체의 신뢰와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공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시장 평가가 정착되면, 투자자들은 불안 대신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할 수 있고, 정부 역시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거래소와 투자자, 감독당국이 모두 신뢰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빗썸 사태는 ‘정보의 비대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거래소가 중요 투자 정보를 스스로 공개 않고, 당국이 이를 방치한 결과, 투자자들은 위험을 예측할 수 없었다. 신뢰는 투명성에서 출발한다. 거래소의 운영 구조와 리스크를 외부가 들여다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 비로소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불신의 악순환을 끊고 성숙한 금융 인프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