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렌딩 서비스 논란] ⑤ 투자자 보호 인프라 확충, 더는 미룰 수 없다

형식적 위험 고지로는 투자자 보호 불가능 제도권 금융은 사전 교육·적합성 평가로 안전장치 마련 가상자산 시장, 보호 절차 전무…투자자 무방비 노출 청년층 ‘빚투’ 확산, 소득·자산별 투자 한도 필요성 대두 실질적 제도화 없이는 피해 반복 불가피

2025-10-01     최지연 기자
사진=뉴스1

[아시아에이=최지연 기자] 빗썸 렌딩플러스 사태는 단순히 거래소의 공격적 영업 전략이 불러온 논란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서 투자자 보호 인프라가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수천 명의 투자자가 강제 청산을 경험했지만, 이를 사전에 걸러내거나 위험 감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절차는 전무했다. 이는 자본시장과 비교했을 때 뚜렷한 공백이며, 장기적으로 반드시 해소해야 할 구조적 과제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위험 고지는 대부분 형식적인 절차에 그친다. 투자자는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문구에 단순 동의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고위험 상품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담보 가치가 단기간 급락할 경우 투자자가 대응할 시간조차 없이 강제 청산이 이뤄지고, 원금이 순식간에 증발할 수 있다. 이러한 극단적 위험성을 고려하면 단순 고지로는 투자자를 지킬 수 없다. 더구나 강제 청산 경험자가 13%에 달한다는 금융당국 자료는 현재의 보호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방증한다.

반면 제도권 금융은 이미 체계적인 보호 장치를 마련해 왔다. 주식시장에서 신용융자나 선물옵션 거래를 하려면 반드시 사전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투자자의 자산 규모와 투자 경험, 위험 선호도를 평가하는 절차를 거친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이를 통해 투자자 등급이 매겨지고, 등급에 따라 접근 가능한 상품이 구분된다. 레버리지 한도 역시 엄격히 관리돼 개인 투자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한다. 예컨대 초보 투자자는 고위험 파생상품에 참여할 수 없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경험을 가진 투자자에게만 일부 허용된다.

가상자산 시장에도 이러한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빚을 내 코인에 투자하는 ‘빚투’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소득·자산 수준에 따른 투자 한도 차등화가 필요하다.

연소득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거나 부채 비율이 높은 경우, 고배율 레버리지 상품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투자자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대규모 손실을 예방하고 금융 불안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 왔다. 일본은 2023년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키고, 거래소가 제공할 수 있는 대여·레버리지 상품의 한도를 명확히 규정했다.

싱가포르 금융관리청(MAS)은 투자자 적합성 심사와 리스크 고지 의무를 강화했으며, 일정 소득 수준에 따라 레버리지 접근을 제한하는 장치를 도입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등록 요건을 위반한 렌딩 상품 제공업체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며 사실상 무허가 영업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 자율규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제도화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는 더 이상 거래소 자율에 맡길 수 없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금융법 학계에서는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에 대해 적합성 평가·투자자 등급제·레버리지 한도 설정을 법적 의무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전문가는 “제도권 금융에서는 기본으로 시행되는 절차가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이 상태를 방치한다면 피해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빗썸 렌딩플러스 사태는 단순한 거래소 영업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시장을 방치한 결과다. 투자자 보호 장치가 형식적 고지를 넘어 실질적 제도화로 자리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또 다른 피해 사례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의 자유와 시장의 혁신을 존중하되,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자 금융당국의 책임이다. 한국 가상자산 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보호 인프라 확충이 더는 미룰 수 없는 핵심 과제임이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