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1%대, 내수침체가 만든 장기 불황의 그림자
인구구조 변화·가계부채·투자 부진이 삼중 압박, 정부 대응에도 근본 해법은 산업 경쟁력
[아시아에이=김수빈 기자]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성장률은 1%대로 내려앉았고, 내수는 구조적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5일 한국신용평가가 공개한 '깊어지는 내수침체, 구조적인 리스크로 고착화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GDP 성장 기여도 추이를 보면 내수는 2014~2016년 평균 3.5%에서 2023~2024년 0.8%로 급락했다.
반면 수출은 같은 기간 0.7%에서 2.2%로 오르며 내수를 추월했다. 수출 의존도가 심화되는 사이, 내수는 소비와 투자가 모두 위축된 채 장기간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는 가장 뚜렷한 제약 요인이다. 생산연령인구는 2019년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해 2025년 약 3600만 명, 2035년에는 3200만 명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중위연령은 2035년에 50세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층은 평균소비성향이 64% 수준으로 40대(77.5%)보다 훨씬 낮다. 실제로 60세 이상 가구주 비율은 2019년 27.7%에서 2024년 35.3%로 크게 뛰었고, 2039년에는 4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속도 자체가 소비여력 위축을 구조화시키는 셈이다.
부채 문제도 내수 침체를 키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로 주요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가구당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14년 148%에서 2024년 175%까지 올랐다.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5.2%로 미국(28.5%), 일본(37.0%), 영국(46.2%)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PIR(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2020년 5.3배에서 2025년 8.2배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가계대출 연체율은 2025년 5월 0.47%로 10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용카드 연체율도 2.3%까지 상승했다.
투자 부문에서는 건설과 해외직접투자가 동시에 내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건설투자는 GDP의 14.2%를 차지하지만 지방 주택시장 침체와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담으로 공급 여력이 제약되고 있다.
주요 건설사의 PF 보증잔액은 2020년 15조 원에서 2024년 27조 9000억 원으로 급증했으며, 같은 기간 미분양 물량은 1만9000 호에서 7만 호로 늘어났다.
해외직접투자도 2017년 496억달러에서 2024년 959억달러로 증가하는 반면, 외국인직접투자는 346억달러에 그쳐 불균형이 심화됐다. 여기에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합의까지 예정돼 있어 자본 유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정부는 확장 재정으로 대응에 나섰다.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통해 전략 산업 투자를 본격화하고, 13조9000억 원 규모의 소비쿠폰을 지급해 민간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또 31.8조 원 규모 추경을 통해 경기 진작을 꾀했다.
그러나 국가채무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인구구조 변화와 복지지출 확대만으로도 국가채무비율이 2050년 GDP의 100%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확장 재정정책이 불가피하더라도 장기적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대만은 한국과 유사한 인구구조 제약 속에서도 반도체 산업 중심의 투자 확대를 통해 2024년 4.8%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투자→수출→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결과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반도체, 자동차, 조선, 이차전지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산업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이 생산성 제고와 혁신 생태계로 이어지고 기업이 국내 성장 동력에 과감히 투자한다면 반등의 여지는 충분하다"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부양이 아니라 구조적 리스크를 뚫어낼 전략적 투자와 산업 경쟁력 강화"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