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렌딩 서비스 논란] ① 고위험 레버리지, 투자자 불안 증폭
기존 렌딩 상품 종료…‘렌딩플러스’로 서비스 일원화 최대 4배 레버리지 허용, 투자자 피해 13% 강제 청산 서비스 재개 3일 만에 1,791억 원 대여…수요 여전 금융당국 행정지도에도 부분 조정만…규제 공백 여전 ‘코인판 빚투 시대’ 상징, 투자자 보호와 제도화 과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이 지난 2025년 7월 선보인 ‘렌딩플러스(Lending Plus)’ 서비스는 출시 직후부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투자자가 보유한 원화나 가상자산을 담보로 맡기면 거래소가 이를 바탕으로 최대 4배까지 자금을 대여해주는 구조로, 소위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해진 것이다. 단기간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이용자들의 기대가 컸지만, 곧바로 “위험을 거래소가 아닌 개인에게 전가하는 상품”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가상자산은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급등락하는 고위험 자산이다. 여기에 고배율 레버리지를 얹으면 투자자는 순식간에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손실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빗썸의 렌딩플러스 역시 담보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강제로 청산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렌딩플러스 이용자 중 약 13%가 강제 청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품이 운영됐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수요는 상당했다. 빗썸이 8월 초 서비스를 재개했을 당시 불과 3일 만에 1,791억 원 규모의 대여가 성사됐다. 이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고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투자자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고위험·고수익을 선호하는 투자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라며, 경쟁 거래소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빗썸이 공격적으로 렌딩 서비스를 내놓은 것은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린 ‘승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이러한 행보가 ‘혁신’이라기보다는 거래소 수익성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거래소 수수료 수익은 거래량에 직결되는데, 레버리지는 거래 규모를 인위적으로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빗썸이 위험 관리보다 실적 확대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의 본질은 규제 공백이다. 현행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거래소 운영, 상장 기준, 이용자 자산 보호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대여·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거래소들이 사실상 자율적으로 상품을 설계·운영할 수 있었고, 피해 발생 시 법적 구제가 어려운 구조가 이어졌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중순 업계 협회인 DAXA를 통해 긴급 행정지도를 내리고,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기 전까지 신규 영업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빗썸은 완전히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고, 레버리지를 4배에서 2배로 낮추는 방식으로 조정해 운영을 이어갔다. 이는 행정지도의 실효성 논란을 불러왔고, “투자자 보호보다는 사업 연속성에 무게를 둔 선택”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주식 시장에서의 신용융자 남용과 비슷한 양상이 가상자산 시장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신용융자 확대는 개인 투자자의 손실을 키우며 금융당국의 제재를 불러왔다. 가상자산 시장 역시 고위험 구조가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대여가 대규모 매도 물량을 유발해 시세를 흔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단순히 개인 피해에 그치지 않고 전체 시장 질서까지 흔들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내재돼 있다는 점에서다.
한편 빗썸은 기존에 운영되던 ‘상승장 렌딩’, ‘하락장 렌딩’, 간편렌딩 등 여러 상품을 7월 말 종료하고, 모든 대여 서비스를 ‘코인대여 서비스(렌딩플러스)’로 일원화했다. 기존 상품의 신규 신청은 중단됐고, 이미 체결된 계약만 만기까지 유지됐다. 현재 투자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여 상품은 렌딩플러스로 정리된 상태다.
결국 이번 논란은 단순한 신사업 시도를 넘어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투자자들은 단기 수익에 매달리며 위험을 감수했고, 거래소는 이를 수익화하는 과정에서 보호 책임을 뒷전으로 미뤘다. 규제 당국은 뒤늦게 개입했지만, 법적 공백 속에서 실효성 있는 제재를 담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코인판 빚투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투자자 보호와 제도화라는 과제를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