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의 그늘] ⑬ ‘초이노믹스’ 박근혜 정부, 규제 완화와 초저금리가 불러온 대출 폭증

소득 없이 늘어난 부채…착시 성장의 허상 전세대출 급팽창, 청년·신혼부부까지 빚 구조에 편입 부양 성과로 포장된 정책, 금융안정성은 뒷전 단기 경기부양의 대가, 부채 의존 경제 구조 고착화

2025-09-19     송기철 기자

[아시아에이=송기철 기자]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유럽 재정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 국면에 있을 때 집권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성장률 2%대, 소비·투자 위축, 청년실업 심화 등 복합불황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정부는 내수 활성화와 주택시장 회복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문제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생산성 향상이나 소득 기반 개혁 같은 구조적 처방이 아니라, 대출을 풀어 부동산 수요를 자극하는 단기 부양책에 몰입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초이노믹스’다. 2014년 정부는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60%로 완화하고, 소득심사 요건도 크게 낮췄다. 동시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14년 2.5%에서 2016년 1.25%까지 낮추며 사상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정책 신호가 나오자 은행권은 주택담보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했고, 가계는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분위기 속에 대출로 주택시장에 몰렸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원자료=한국은행

당시 정부는 이를 경기 회복의 신호로 자평했다. 실제로 주택거래량은 2013년 85만 건에서 2015년 119만 건으로 급증했고, 건설투자와 분양 물량도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수치는 소득 없는 대출 확대로 만들어진 착시 성장이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 980조 원이던 가계신용(가계부채)은 2017년 1,450조 원으로 불어났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75%에서 95%로 치솟았다. 불과 4년 만에 470조 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대출의 질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몰두하면서 상환능력보다 담보가치만 보는 대출 관행을 사실상 방치했다. 은행들은 소득심사 없이도 대출을 내줬고, 가계는 저금리를 기회로 삼아 무분별한 ‘빚투’에 나섰다. 실질소득은 제자리였지만 가계부채는 연평균 8~10%씩 불어났다. ‘소득 없이 빚으로 사는 구조’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특히 다주택자·고소득층이 저금리 레버리지를 이용해 대출을 끌어다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무주택 서민과 청년층은 더 큰 빚을 내지 않으면 내 집 마련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원자료=한국은행.

이 시기 처음으로 전세자금대출이 폭발적 성장세를 보인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2013년 40조 원대였던 전세대출 잔액은 2017년 100조 원을 돌파했다. 전세대출은 원리금 상환이 아닌 이자 납부 위주로 설계돼 있어 진입장벽이 낮았고, 무주택 청년·신혼부부들이 대거 부채 구조에 편입됐다. 주거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전세도 빚, 집도 빚’인 구조를 고착시킨 셈이다. 이는 이후 2020년대 역전세난·깡통전세 문제의 직접적 뇌관이 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가 이 같은 흐름을 정책 성공으로 포장했다는 점이다. 주택거래량과 건설투자가 늘어나자 단기 성장률이 일시 반등했고, 정부는 이를 “부양정책의 성과”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착시에 불과했다. 가계의 실질소득은 늘지 않았고, 상환능력은 개선되지 않았다. 경기회복의 토대가 소비와 소득이 아니라 대출과 자산버블에 있었던 만큼, 취약한 구조는 더욱 심화됐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사진=뉴스1

이 시기 가계부채 의존 성장은 소비 위축과 금융취약계층 확대로 이어졌다. 청년층과 신혼부부는 주택 가격 상승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았고, 자영업자들은 저금리를 기회로 보고 사업 확장에 나섰다가 금리 반등과 함께 부실 위험에 내몰렸다.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카드론 등 비담보성 대출까지 급증하며 다중채무자 수도 빠르게 늘었다. 금융당국은 2016년 이후 뒤늦게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강화에 나섰지만, 이미 시장은 과잉 유동성과 부채 구조로 포화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단기 부양과 장기 리스크의 전형적 교과서”라고 평가한다. 규제를 풀어 수요를 끌어올리는 방식은 단기 성장에는 유효했지만, 금융안정성과 소득 기반 성장은 완전히 외면됐다. OECD와 IMF는 2016~2017년 연이어 “한국의 가계부채 급증은 금융위기 촉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정부는 사실상 대응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경기지표를 부풀리기 위해 가계의 미래소득을 선취해 소비를 앞당기는 위험한 도박을 했다”고까지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단기 경기 부양에는 일부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한국 경제는 더 깊은 ‘부채 의존형 성장’의 늪에 빠졌다. 빚으로 키운 일시적 성장 뒤에는, 상환 능력 없이 쌓인 1,450조 원의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만 남았다. 오늘날의 가계부채 위기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가 남긴 구조적 후유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