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중대재해 금융리스크 전방위 반영...기업 조달·투자환경 지형 바뀐다
여신·보증·보험·공시 전방위 개편...“안전관리 역량이 자본비용 좌우”
[아시아에이=김호성 기자] 금융위원회가 지난 17일 중대재해 관련 금융리스크 관리 방안을 확정했다. 은행 여신 심사부터 보험료 산정, 주택금융공사 보증, 자본시장 공시·평가까지 전 영역에 중대재해 정보를 반영하는 방식이다.
안전사고를 단순한 산업 현장 이슈가 아닌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자본시장 신뢰를 직접적으로 흔드는 요인으로 규정한 셈이다.
◇ 여신 심사, ‘중대재해 이력’ 직접 반영= 은행권은 앞으로 여신 심사 과정에서 중대재해 발생 이력을 명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경영·영업위험 항목에 포괄적으로 포함됐지만,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신용등급을 조정하는 독립 요소로 들어간다. 금융위는 올해 안에 신용평가 기준 개정을 마무리하도록 예고했다.
이는 기업 조달 여건에 즉각적인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안전사고가 잦은 건설·제조업체는 차입금리 인상이나 한도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체계적 안전관리 역량을 입증하는 기업은 차별화된 조달금리를 확보할 수 있다. 금융권이 위험 가중치를 축적해 배점을 상향 조정하면, 안전관리 수준은 사실상 기업 신용등급의 핵심 지표로 자리잡게 된다.
◇ PF 보증·보험료, 비용구조 직격= 주택금융공사 PF 보증은 감점 제도를 단계별로 확대 적용한다. 지금까지는 일률적 5점 감점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점수 감점(5~10점), 등급 하향, 보증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가산 보증료율이 최대 0.20%p까지 붙을 수 있고, 안전관리 우수기업은 오히려 보증료 할인 폭이 확대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현장 안전 리스크 관리가 곧 보증 비용을 좌우하는 구조가 마련되는 셈이다.
보험상품도 크게 달라진다. 중대재해 사고 여부와 동일 유형 사고 반복 여부가 보험료 할인·할증 요소로 반영된다.
보험료는 5%에서 15%까지 차등 적용될 수 있으며, 산재예방 우수기업 인증이나 ISO 45001을 확보하면 최대 1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안전 투자가 직접적인 비용 절감 효과로 연결되는 구조가 뚜렷해지는 것이다.
◇ 자본시장 공시 강화, ESG·투자지침 연계 = 자본시장에서는 상장사가 중대재해 발생 사실을 당일 공시해야 하고, 중대재해처벌법 판결도 즉시 공시 대상이 된다.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에도 최근 수년간 발생한 중대재해 현황과 대응 조치가 포함된다.
이는 기업들의 공시 리스크 관리 부담을 크게 높인다. 사고가 발생하면 단순히 과징금이나 벌금에 그치지 않고, 자본시장에서의 평판 리스크로 직결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전사고 이력 자체가 투자 판단의 핵심 지표로 떠오른다. ESG 평가기관도 중대재해 반영을 의무화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신용은 공식 평가 체계에 편입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까지 예정돼 있어, 투자 배제나 비중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정책금융 인센티브, ‘당근과 채찍’ 병행 = 금융위는 징벌적 요소와 함께 인센티브도 병행한다.
기업은행은 ESG경영확인서를 보유한 기업에 최대 1.0%p 금리 감면을 적용하고, 신보·기보는 고위험 산업군의 노후설비 교체에 대해 보증비율 90~100%, 보증료 감면을 제공한다.
산업은행은 안전설비 투자 기업에 최대 0.8%p 금리 우대를 적용한다.
결국 기업은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강화하면 오히려 비용 절감과 투자 유치로 이어지는 이중 구조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금융권 리스크 관리의 패러다임이 단순 재무 중심에서 비재무 리스크까지 확장된 결과다.
이번 조치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산업군은 건설·제조업이다. 현장 안전 리스크가 높은 만큼, 대출 심사와 보증, 보험료, 공시 등 전 영역에서 비용 구조가 변한다. 나아가 글로벌 ESG 투자 트렌드와 맞물리며, 해외 자본시장에서의 조달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향후 안전관리 부문을 재무 전략의 일부로 편입할 수밖에 없다"라며 "금융권 입장에서도 리스크 평가 체계가 고도화되면서, 안전관리 역량이 기업 신용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