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탁사 책임준공 리스크, 총량은 줄었지만 ‘질적 부담’ 뚜렷
[아시아에이=김수빈 기자]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 리스크가 겉으로는 완화되는 듯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차원의 위험이 부각되고 있다.
사업장이 속속 준공되면서 미투입 사업비 규모는 대폭 줄었지만, 그 과정에서 신탁사들이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사례가 늘고, 법적 책임이 구체화되면서 실질 부담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11일 한국신용평가가 공개한 '부동산신탁사 책임준공 리스크, 어디까지왔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285곳에 달했던 책임준공 사업장은 2025년 6월 현재 123곳으로 줄었다.
공정이 진행 중인 사업장도 같은 기간 282곳에서 39곳으로 축소됐다. 무엇보다 준공을 위해 남아 있던 미투입 사업비가 10조원에서 1조원 수준으로 줄면서 총량 부담은 크게 가벼워졌다. 양적 지표만 놓고 보면 업계 전반의 우려는 상당 부분 누그러진 셈이다.
그러나 신탁계정대 투입액은 오히려 눈에 띄게 늘었다.
2022년 당시 500억원에도 못 미쳤던 계정대 잔액은 불과 3년 만에 1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미 준공된 사업장에 투입된 금액이 1조원에 달하고, 공정이 남은 사업장에도 2000억원이 쓰였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69%에 달해 차입형 신탁(17%)과 비교해도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공정이 남아 있는 사업장만 보면 충당금 적립률이 90%에 육박한다. 이는 계정대 투입이 단순한 일시적 보전이 아니라 상당한 손실 위험을 수반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금융기관과의 관계에서도 양면성이 나타난다.
신탁사들이 보유한 PF 익스포저는 2023년 말 7조원에서 2025년 6월 2조6000억원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책임 미이행 사업장의 PF 잔액은 8000억원에서 1조6000억원으로 두 배 뛰었다.
소송에서도 PF 원리금 전액 배상 판결이 이어지며 신탁사의 법적 책임이 구체화되는 상황이다. 양적 축소의 이면에서 질적 리스크가 선명해진 대목이다.
신용평가사 스트레스 테스트에 따르면 업계 전반이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1년 내 추가 계정대 투입이 1000억원, 미이행 PF 증가분도 1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대손 비용이 2900억원 발생할 것으로 분석돼 개별 신탁사 재무구조에 따라 체감 충격은 상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책임준공 리스크는 총량보다는 개별 회사의 자본력과 관리 역량을 가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책임준공은 애초에 시공사와 금융기관 사이의 리스크를 흡수하는 장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양 부진과 시공사 신용도 저하가 겹치면서 신탁사가 직접 자금을 투입하거나 대체 시공사 확보에 실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 리스크가 과거에는 장부 밖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었지만 이제는 계정대 투입, 소송 패소 등으로 실질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업계의 주요 과제는 단순한 숫자의 축소가 아니라, 어떤 신탁사가 구조적 리스크를 방어할 체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