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명 정부 첫 주택 공급 발표, 착공 숫자만 나열, 중요한 ‘분양가’는 빠졌다

LH 직접 시행, 분양가 환원 없인 공공성 증명 못 한다 청년·무주택자 기대에 턱 없이 못 미친 주택 공급 대책 전세대출 1억 축소는 미봉책, 단계적 축소 로드맵 필요 시세교란 엄벌과 데이터 투명화 없이는 시장 신뢰 회복 불가

2025-09-08     김한수 기자

[아시아에이=김한수 기자] 정부가 최근 발표한 부동산 공급 대책은 겉보기엔 화려하다. 수도권에 향후 수십만 가구를 착공하겠다는 계획, 3기 신도시를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구상, 그리고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협력체계까지 제시됐다. 그러나 시장과 국민이 가장 궁금해한 핵심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얼마에 분양할 것인가.” 정부가 아무리 착공 물량과 공급 로드맵을 내세워도, 가격 신호가 빠진 대책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된장 없는 된장찌개처럼, 본질이 비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주택자와 청년층이 기대한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분양가가 나올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기준이다. 정부가 민간의 과도한 마진을 문제 삼고 LH 직접 시행을 강조했다면, 이어지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민간의 불필요한 이윤과 마케팅 비용을 걷어내고, 분양가는 시세의 60~70% 수준으로 낮추겠다.” 이런 가이드라인 하나만 있어도 시장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다. 기존 주택 수요가 대기 수요로 전환되고, 심리적 상승 압력이 꺾이면서 가격 안정 기대감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분양가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공급 확대방안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세대출 문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1주택자 전세대출 한도를 3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 일시적 땜질에 가깝다. 전세대출이 지난 10여 년간 집값 급등의 ‘숨은 연료’로 작용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단계적 축소·폐지의 중장기 로드맵이다. 언제부터 어떤 차주군을 대상으로, 어떤 속도로 줄여나갈 것인지, 대체할 주거지원 수단은 무엇인지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시장 심리를 바꾸는 힘은 단순한 한도 조정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방향성”이다. 투자자·실수요자 모두 정부의 의중을 읽고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책은 방향성보다 단기 효과에 집착한 채, 구조적 처방을 회피했다. 결과적으로 시장에는 혼란만 남았다.

이번 대책은 대출 규제 측면에서도 정합성이 부족하다. 정부는 강남 일부 고가 주택에 대해 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서울의 다른 선호지에 대한 대응은 빠져 있다. 특정 지역만 규제하는 방식은 시장 왜곡을 불러오고, 결국 또 다른 풍선효과를 낳는다. 대출 규제는 “가격 안정→심리 전환→거래 질서 회복”이라는 단계적 구조 속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예컨대, 무주택자 보호, 다주택자 억제, 지역별 균형이라는 큰 틀 안에서 맞춤형 규제를 설계하는 식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방식은 사다리 없는 발판만 던져놓은 격이다. 정책의 의도와 수단이 맞물리지 않으면, 시장은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는 LH 직접 시행을 강조하며 공공성을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접 시행의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증거는 분양가로만 입증된다. 단순히 “LH가 시행한다”는 선언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민간이 과도하게 가져가던 마진을 줄였다면, 그만큼의 혜택을 분양가 하락으로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 특히 3기 신도시는 “연 6만 가구 착공”이라는 물량보다 “입지별·면적별 예상 분양가 밴드”가 더 중요하다. 공급 규모만 강조하는 것은 신뢰를 갉아먹는다. 시장은 공급보다 가격을 통해 신뢰를 판단한다. 분양가를 말하지 않는 정부는 결국 시장과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다.

자전거래, 허위신고, 시세조종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모호하다. 만약 정부가 “주가조작 수준의 강력한 처벌을 부동산에도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면, 시장은 즉시 반응했을 것이다.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있어 강력한 법 집행 예고만큼 빠른 카드도 없다. 아울러 거래·분양·입주 데이터의 투명 공개가 필수다. 실시간 API를 통해 민간 검증이 가능해져야, 정책 신뢰가 쌓이고 시장 불신이 줄어든다. 투명성은 정부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싼 안정 장치다.

역사적으로 원가연동제와 분양가 상한제를 병행한 시기에는 집값이 안정세를 유지했다. 반면 전세대출 확대와 불투명한 분양가 정책이 결합된 시기에는 가격이 급등했다. 정부는 새로운 구호를 찾을 것이 아니라, 과거의 교훈을 복기해야 한다. 가격은 시장의 언어다. 정부가 가격을 언급하지 않는 순간, 시장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

이번 대책은 착공 물량과 제도 개선이라는 숫자와 형식은 있었지만, 본질적인 메시지는 없었다. 정부가 다음 보완 대책에서 반드시 넣어야 할 문장은 세 가지다. 첫째, “분양가는 시세 대비 60~70% 수준으로 책정한다.” 둘째, “전세대출은 5년 로드맵에 따라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셋째, “시세 교란 행위는 주가조작 수준으로 처벌하며, 모든 데이터를 투명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