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전망] ⑤ EU, 유로 기반 스테이블코인 육성으로 화폐 주권 강화 모색
발행·유통·감독을 아우르는 통합법 ‘MiCA’ 채택 유럽중앙은행과 증권감독기구 간 이중 감독 체계 유로 기반 토큰화 자산 생태계의 전략적 육성
[아시아에이=최지연 기자]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가상자산 규제 체계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의 제도화를 주도하고 있다. MiCA는 단순히 발행 요건을 정하는 것을 넘어서, 유통·감독·투자자 보호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괄하는 통합형 규제 프레임워크다.
MiCA는 2023년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자산참조형 토큰(ART: Asset-Referenced Token)과 전자화폐 토큰(EMT: E-Money Token)을 별도 규정하고, 각각의 발행 주체에 대한 라이선스 요건, 준비금 요건, 공시·감사 기준, 유럽중앙은행(ECB) 및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의 감독 권한을 명시했다. 예컨대, 유로화 기반 EMT를 발행하는 경우엔 EU 내 금융기관(전자화폐기관 또는 은행)으로 등록돼야 하며, ART 발행 시에는 담보 자산의 종류·위험성·평가 방식까지 규제당국에 상세 보고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유럽의 “위험 중심 접근(Risk-based Approach)”이다. 단순히 ‘가상자산’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 시스템 리스크,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기준으로 규제 강도를 차등 적용한다. 대규모 유통이 예상되거나 법정통화 대체 가능성이 높은 스테이블코인은 보다 엄격한 심사를 받으며, 리스크가 낮은 경우엔 비교적 간소한 신고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이는 금융 혁신과 시장 안정의 균형을 꾀하는 EU의 전략적 접근을 보여준다.
감독 체계도 이중적이다. EU 금융감독기구(ESMA)가 규제 전반을 총괄하지만, 유로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경우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별도로 금융 시스템과의 연계성, 지급결제 인프라 통합,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 등을 판단하게 된다. 이 같은 이중감독 체계는 중앙은행이 디지털 자산 시장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유럽은 MiCA 도입과 함께 유로화 기반의 민간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자산 인프라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SG포지(SG-Forge)와 독일의 도이치방크는 유로 기반 EMT 발행을 공식화했고, 유럽투자은행(EIB)은 디지털 채권 발행 시 토큰화 결제 방식으로 유로 스테이블코인을 연계하는 방안을 실험하고 있다. 이는 EU가 미국의 달러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대응해 자체 디지털 유로화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장기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EU의 접근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동안 한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가상자산’ 범주로만 간주하며 금융권 편입을 주저해왔으나, EU는 이를 화폐 기능과 연계된 준통화로 보며, 법제도 중심의 ‘적극적 관리’ 체계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고려해 중앙은행과 민간 영역의 기능 분담을 제도화한 점도 국내 논의에 참고할 부분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통화주권과 금융안정의 문제이며, 유럽은 이를 금융 규제체계 전체와 연결해 체계적으로 풀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표준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 MiCA는 단순한 법률이 아닌, 디지털 자산 시대 유럽의 금융 주권을 지탱할 전략적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로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