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의 그늘] ⑩ 이재명 정부의 대출정책, 이대로 괜찮나?

단기 부양에 매달린 정책, 장기적 부채 폭탄 자초 정책금융 남용이 만든 가계부채 의존 경제 신용카드 사태에서 배우지 못한 교훈, 부동산 대출로 반복 성장률 집착이 금융 안정보다 앞선 오류 반드시 극복해야

2025-09-01     송기철 기자

[아시아에이=송기철 기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는 단순히 개별 가계의 금융 습관 문제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 뿌리에는 역대 정부의 대출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경기 부양과 소비 촉진을 위해 반복적으로 도입된 각종 대출 규제 완화와 정책 금융 확대는 단기적으로는 성장을 자극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계부채의 눈덩이 효과를 불러왔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가계부채 2,000조 원 시대는 단순한 시장 실패가 아니라 정책적 선택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며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고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발급을 사실상 묵인하면서, 신용카드 대출 잔액은 3년 만에 세 배 이상 급증했다. 당시 정책 목표는 소비를 살리고 내수를 부양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 확대는 결국 대규모 연체 사태로 이어졌고, 2003년에는 이른바 ‘카드 대란’이 터지며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이 시기의 실패는 단기 부양책이 장기적 금융안정성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2000년대 들어 정부는 또 다른 형태의 부양책을 꺼냈다. 저금리 정책과 함께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LTV·DTI 한도를 높여 부동산 시장의 숨통을 틔워줬다. 주택 거래를 촉진해 건설업을 살리고 내수를 확장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계는 자산 형성 수단으로 부동산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고, ‘영끌’과 ‘빚투’라는 신조어가 상징하듯 부채를 끌어다 집을 사는 구조가 고착됐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동안 가계의 총부채는 급속히 늘어났고,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취약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초장기·저금리 상품을 공급하며 서민 주거 안정을 도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출 총량을 더 키우고 미래 세대까지 부채 부담을 전가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금리 인상기에도 정책금융을 통한 대출 확대가 이어지면서, 가계는 원리금 상환 능력을 갖추기도 전에 더 많은 빚을 떠안게 됐다. 결과적으로 정책은 집값 안정에도 실패했고, 부채 구조만 더脆弱해졌다는 평가다.

사진=뉴스1

이러한 정책 실패의 공통점은 부채 관리보다는 경기 부양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데 있다.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체감 경기를 개선하려는 정치·경제적 필요가 우선되면서, 가계의 상환 능력이나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신용카드 사태에서 배우지 못한 교훈은 부동산 대출 정책에서 반복됐고, 부채 규모는 정부의 대응이 나올 때마다 한 단계씩 더 커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대출 억제책이 아니다. 첫째, 정책금융 공급 구조를 전면 재검토해 가계의 상환 능력에 기반한 금융 지원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LTV·DTI 같은 대출 규제는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일관성을 유지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쉽게 완화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부채 관리와 금융교육을 연계해 가계 스스로 부채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하루아침에 불어난 것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 동안 반복된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자, 단기 부양 논리에 매달린 정부의 선택이 만든 구조적 위기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정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채 관리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