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크레딧의 부상] ① 폭발적 성장의 배경과 기회
2000년 460억 달러 시장, 2025년 2조 달러로 성장 금융위기 이후 은행 대출 축소와 규제 강화가 촉발 미국이 시장의 50% 차지, 연평균 14% 이상 성장세 연기금·보험사, 전통 채권 대비 2~3%P 높은 금리에 대거 참여
[아시아에이=송기철 기자] 프라이빗 크레딧(Private Credit)은 전통적인 은행 대출이나 공개 채권시장을 거치지 않고, 사모펀드나 자산운용사, 비즈니스 개발 회사(BDC) 같은 비은행 금융기관이 기업에 직접 대출을 제공하는 비공개 금융 형태를 말한다. 즉, 은행 시스템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 대출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대출 조건이 차입자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설계되고 실행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절차를 크게 단축시킬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채권 투자보다 더 높은 금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대체투자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은행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은행권의 과도한 위험자산 대출이 지목되면서 각국은 은행 대출에 대한 자본 규제와 감독을 대폭 강화했다. 은행들은 위험도가 높은 기업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기존에 은행을 통해 대출받던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를 찾게 되었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사모펀드와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한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이었다. 은행이 물러난 자리에서 비은행권이 빠르게 세를 불리면서 대체금융의 대표적인 형태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 속에서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기관투자자들의 욕구가 더해지면서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에는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연기금·보험사·헤지펀드 같은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전통적인 채권이나 주식만으로는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프라이빗 크레딧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은행 대출보다 금리가 높으면서도 공공시장 대비 변동성이 낮은 특성이 장기 투자자에게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수치를 보면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의 성장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미국 내 시장 규모는 2000년 약 46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23년 1조 달러를 돌파했고, 2024년에는 약 1조 3,400억 달러에 달했다. 글로벌 전체로는 2025년 현재 약 2조 달러에 이르렀으며, 이는 2009년 이후 약 5배 성장한 수치다. 향후 몇 년 내 2조 6천억 달러, 2조 8천억 달러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성장의 또 다른 요인은 프라이빗 크레딧이 제공하는 속도와 유연성에 있다. 공개 채권 발행은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조건이 획일적이지만, 프라이빗 크레딧은 차입 기업의 상황에 맞춰 담보 조건, 금리 구조, 만기 등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자금 확보, 인수합병(M&A), 구조조정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중견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은행 대출보다 프라이빗 크레딧을 선호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은행 금융기관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 시장도 이런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금융연구원(KCIF)에 따르면 국내 기관투자자 중 47%가 프라이빗 크레딧 투자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다. IMM Credit & Solutions 같은 국내 운용사는 선도적으로 첫 번째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를 조성하며 시장 기반을 확대하고 있고, 연기금과 보험사 역시 장기 수익 확보 차원에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결국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은행 대출의 공백, 대체투자 수요 확대, 맞춤형·신속 자금 공급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전체 기업 대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성장 속도와 잠재력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기회 요인은 충분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시장의 팽창세가 전 세계 시장을 견인하고 있고, 한국 역시 이에 발맞춰 새로운 투자처와 자본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키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