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전망] ③ 달러 패권을 향한 미국의 이중 전략

스테이블코인 규제 모델과 글로벌 통화 주도권 확보 전략 국제 거래에서 달러 연동 코인이 차지하는 실질 영향력 중시 Fed·SEC·의회의 규제 이견 속에도 달러화 중심 생태계는 공고 ‘준비금·투명성·허가제’ 3원칙으로 제도화 시도 본격화

2025-08-26     최지연 기자

[아시아에이=최지연 기자]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니라, 금융시장에서 결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준화폐적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디지털 자산 시장이자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금융안정과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을 민감하게 바라보며 제도권 편입 논의를 선도해왔다.

그 중심에는 2023년 발표된 '스테이블코인 투명성법안(The Stablecoin Transparency Act)'이 있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주체에게 준비금 보유 의무, 회계 감사 및 공시 요건, 인허가 등록 요건 등을 요구함으로써, 시장 안정성과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자료정리=아시아에이

특히 이 법안은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첫째, 1:1 법정화폐 준비금 보유이다. 민간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더라도, 유통량에 상응하는 고유동성 자산(미국 국채, 현금 등)을 준비금으로 확보하고, 이를 제3의 회계법인을 통해 주기적으로 감사·공시해야 한다. 이는 ‘가격 안정성’이라는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장치다.

둘째, 발행 주체의 등록 및 인허가 제도다. 누구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는 없으며, 금융감독기구(Fed, OCC 등)에 등록된 기관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위험 관리능력, 재무 건전성, 법률 준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시스템 리스크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취지다.

셋째, 연방준비제도와의 상호운용성 확보다.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결제 시스템에 통합될 경우, 금융당국이 이를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위기 상황에서의 금융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려 한다.

이러한 원칙 하에,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서클(Circle)의 USDC나 페이팔(PayPal)의 PYUSD는 모두 자산 명세서와 회계 보고서를 매월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연방 기관이 아닌 주 정부의 송금업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영업하고 있으나, 향후 연방 차원의 통합 규제가 도입되면 금융범죄단속망(FinCEN), 통화감독청(OCC), 증권거래위원회(SEC) 등과의 복합적인 규제 적용이 예상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이 같은 논의에 발맞춰 민간 디지털화폐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Fed는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로 유통될 경우, 기존 예금자금의 이탈, 지급결제 시스템의 불균형, 통화정책의 약화 등의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본다. 특히 실물경제에서 ‘민간 화폐’가 공공 화폐를 대체하는 현상이 본격화될 경우, 이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Fed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스테이블코인(SoSIs: Systemically important stablecoins)에 대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감독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정치적으로는 규제 주체를 둘러싼 이견도 존재한다. 공화당은 과도한 연방 규제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민간 주도의 시장 활성화를 우선시하는 반면, 민주당 일부는 SEC나 Fed 중심의 강력한 규제 틀을 선호한다. 이러한 이견 속에서도, 미국은 ‘발행은 민간, 규제는 공공’이라는 기본 원칙 아래, 점진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주체를 둘러싼 정치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글로벌 통화질서에서 달러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민간이 발행하더라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국제 무역 및 디지털 자산 거래에서 달러 사용을 촉진시킨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 통화의 네트워크 효과를 유지하고,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확장이나 유로 기반 토큰화 자산의 부상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USDC(서클)나 USDT(테더)처럼 미국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DeFi·크로스보더 결제의 표준처럼 자리잡게 되면, 미국 정부는 공식적인 금융 제재나 중앙은행 통화 공급 외에도 ‘민간 기반 디지털 달러 생태계’를 통한 비공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통적 SWIFT 시스템을 넘어서는 새로운 디지털 금융 패권 수단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미국이 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발행 허용 + 규제 견제”라는 이중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맥락이다.

요컨대,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규제 체계를 단순히 금융 리스크를 억제하는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통해 글로벌 디지털 금융질서에서 통화 패권을 유지하고, 혁신적 민간 생태계와 공공 금융 시스템 간의 균형을 모색하는 전략적 도구로 인식된다.

따라서 미국은 시장 친화적인 제도 설계와 동시에 공공 규제 기관의 개입을 정교하게 결합한 ‘혼합형 프레임워크(hybrid framework)’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준비금·투명성·공시 등의 신뢰 기반을 강화하면서도 민간 주체의 혁신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이 같은 모델은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가 단순한 기술이나 회계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 통화질서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나아가 글로벌 금융환경 속에서 자국 통화의 영향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