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3 12:37  |  오피니언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⑪] 추니박의 산수화가 시작된 곳, 울진의 불영계곡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불영계곡의 아침, 화첩에 수묵사생, 2003 / 그림=추니박
[아시아에이 = 글·그림 추니박]
경북 영주에서 울진으로 가는 길 100킬로 정도의 길을 따라 구불구불 흐르는 계곡이 불영계곡이다. 그 사이에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불영사가 있는데 고즈넉한 정취를 담고 있는 절이라 스케치를 다니다 잠시 명상에 잠기거나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불영계곡은 우리나라의 어떤 계곡보다 길 아래로 나있는 절벽이 높고 웅장해서 어디에 서서 풍경을 감상해도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중간쯤에 위치한 정자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면 중국의 명산에 와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산수가 수려하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불영계곡의 바위산, 화첩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불영계곡의 커다란 절벽,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나는 2000년부터 불영계곡의 깎아지른 절벽을 그리기 위해 여러 번 스케치를 다녔다. 불영계곡은 여름엔 시원함을 즐길 수 있고 겨울이면 속살을 드러낸 산과 절벽을 그릴 수 있어 어느 계절이고 좋은 기운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불영계곡의 소나무산,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특히 그곳은 소나무가 유명한 곳이라서 산마다 가득 메운 소나무를 그리다 보니 어느 날 소나무를 그리는 나만의 터치가 저절로 터득된 곳이기도 하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외로운 소나무,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내가 소나무를 그리는 준법을 ‘압정준’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수도 없이 많은 소나무를 점을 찍어 그리다 보니 생겨난 적절한 터치이다. 그 덕분에 침엽수에 속하는 나무들을 표현하는 나만의 기법이 생겼으니 그곳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영계곡 중간쯤에서 왼쪽으로 꺾어 한적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물이 깨끗하고 소나무가 멋들어진 곳이 나온다. 그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풍경은 소나무와 바위들이 물과 어우러져 보는 곳마다 운치를 자아내기 때문에 수묵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발길을 붙들어 놓는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정자에서 바라본 불영계곡,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나는 더운 여름 혼자서 그림을 그리다 그 물에 홀딱 벗고 들어가 미역을 감거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가끔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 되어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였던 것 같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소강의 둥근바위,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소강입구,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그 계곡의 지명을 ‘소강’이라 했었는데 최근 검색을 해보니 금강송면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무슨 에코센터 같은 것이 생겨 관광지가 되어있었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소강의 금강송, 화첩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유산인 것 같은데 억지로 가꾸고 다듬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친숙하게 만든다고 사람들을 가까이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다. 어쨌든 그곳엔 보호수로 지정된 500년이 넘은 금강송이 있는데 그곳에 갈 때마다 그 소나무를 한 장씩 그려온다. 그 오래된 금강송을 지나면 금강송이라 부르는 적송 군락지가 시작되는데 조선시대 궁궐을 지을 때 그곳의 소나무를 사용했다고 하니 그곳의 소나무들이 귀하긴 귀한가 보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흐르는 물-불영계곡, 화첩에 수묵사생, 2003 / 그림=추니박

나는 불영계곡의 현동과 왕피천의 풍경을 사랑한다. 현동은 물도 맑고 물고기도 많아서 스케치와 족대질을 좋아하는 화가가 여름을 보내기 딱 좋은 곳이다. 현동의 산수를 그리다 보면 저절로 나는 산수화가가 되어 있기도 하고 가족들과 물고기를 잡으면서 세월을 낚기도 했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왕피천-용소,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왕피천,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2000년 대 초 나는 동료 화가들과 사생을 하러 가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가기도 하고 혼자 산수화 공부를 하러 가기도 하면서 많은 세월을 불영계곡에서 보냈다. 그곳의 산수를 그리다 보면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가 떠오른다.

바위의 섬세한 준과 나무를 사실적으로 그렸던 김홍도가 마치 이곳에서 산수 공부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지형과 산세가 비슷하다. 물론 김홍도는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펼쳐진 관동팔경의 풍광을 그린 화첩과 산수화들이 유명한데 그곳의 풍경도 그만큼 독특하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왕피천-용소가는 길 ,화첩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나의 아들이 네 살쯤 되었을 때 와이프와 후배들과 왕피천에 스케치를 갔었는데 그 왕피천엔 길이 없어서 아들을 업고 계곡물을 헤치고 내려가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그곳의 자연을 보고 마치 내가 다른 어떤 세계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하다는 말을 깨달았고 절대적 고요,,, 텅빈,,, 어떤 공명 같은 것을 그곳에서 체험했다. 그만큼 사람의 때가 묻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된 산수풍경이 우리나라에 또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인간 세계와 분리된 곳이었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페러글라이더를 타고 산수위를 날다 48X35 한지에 먹 2005 / 그림=추니박


그 당시 나는 풍경화보다 추상적이고 표현주의 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 여행에서 왕피천의 계곡을 그리면서 어쩌면 나의 산수 풍경화의 기초가 될 만한 필법에 매력을 느끼게 됐던 것 같다. 아직 구조적으로 어설펐지만 어쨌든 산수화 비슷한 그림을,,, 그때 그곳에서 그렸던 화첩을 들여다보면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겨울나무, 한지에 먹, 2019 / 그림=추니박


그리고 그 해 겨울 야외 사생을 늘 같이 다니던 후배 작가와 3박 4일 간 불영계곡으로 스케치를 갔다. 그때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까지 떨어진 때였는데 우리는 점심으로 정자 앞에서 파는 계란 몇 개를 먹고 온종일 계곡 아래 얼음 위에서 그림을 그렸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겨울산의 초상, 한지에 먹, 2019 / 그림=추니박

춥고 어두컴컴한 계곡으로 살이 떼어져 나갈 듯 칼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댔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곳에서 그렸다. 그 추위는 내게 산수의 골격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과 집중력을 키워줬다. 먹통에 붓을 담갔다 꺼내면 이내 붓이 얼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먹통을 두꺼운 작업복 가슴팍에 넣어 두고 붓을 찍을 때 잽싸게 먹물을 찍어 그림을 그렸다.

그런 상황이라서 나는 산수의 골격을 정확히 파악한 후 일필휘지에 가까운 속도로 붓을 놀려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그날의 그 사생은 내가 풍경을 바라보고 구도를 찾아 뼈대를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 날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겸재 정선의 짙은 농묵 산수에 대해서 이해를 했던 것도 그날의 그 경험 덕이었던 것 같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한겨울의 불영계곡,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그리고 2003년 겨울 크리스마스 전날 나는 다시 아내와 아들 그리고 후배 작가들과 갑자기 불영계곡으로 스케치를 갔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현동의 절벽, 한지에 수묵사생, 2003 / 그림=추니박

그날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일곱 살 먹은 아들이 화첩에 동양화 붓으로 수묵화를 쓱쓱 그려냈는데 자세히 묘사한 어떤 그림보다 그곳의 풍광을 더 정확하고 기운차게 표현한 것에 놀랐다.

아마 내 마음속으로 우리 아들이 훌륭한 예술가가 되겠군!이라고 생각했던 날이 그날이었던 것 같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불영계곡의 주름바위,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나는 불영계곡으로 스케치를 다녔는데 그러면서 나의 소나무 기법과 겨울 산 위에 아련하게 서있는 나무를 주제로 한 산수 풍경화를 나의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게 되었다.

지금 그 불영계곡엔 영주에서 울진으로 가는 엄청난 높이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가로질러 있다. 그 길고 긴 다리 같은 길이 생긴 후 다시는 불영계곡을 가지 않았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추위에 떠는 바위,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그 이후 나의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여러 곳의 다른 풍경과 섬으로 옮겨간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과 산수화를 개발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그 시절의 아름답던 풍경을 차마 새로 난 문명의 길로 덮어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다.

center이미지 확대보기
바람부는 산, 한지에 수묵사생, 2002 / 그림=추니박


오늘도 눈을 감으면 해 질 녘 숙소로 돌아가는 길모퉁이 산등성이로 나란히 서있던 나무들의 반가운 모습이 눈에 서하다. 다들 잘 있지?,,,,,,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 글·그림 추니박

설악산 울산바위 그리기로 보여주는 바위 그리기 / 영상=추니박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박’으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Asia Arts가 제공하는 뉴스콘텐츠에 대해 독자는 친근하게 접근할 권리와
정정·반론·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작권자 ©아시아에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sia Arts Focus

Asia Arts TV

인터넷신문위원회

Asia Arts TV

인기 뉴스

Editor’s Pick

뷰티&패션

Art & Artist

라이프

생활경제 |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