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1 12:42  |  오피니언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⑩] 네팔(2)-하얀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 안나푸르나의 ‘마차푸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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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속의 안나푸르나,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비는 산 위로 오를수록 더 세게 쏟아부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다행히 4학년인 아들은 포터 형들과 손을 잡고 열심히 앞서서 걸어갔다.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무릎 밑까지 닿을 정도의 높이로 우리를 핥고 내려갔다.

‘물을 헤치고 산 위로 나아갔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힘들게 걷다 보니 다리는 아프고 허리는 마비되고 숨은 턱 밑을 차올라 이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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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속으로 사라지는 길,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비가 멎은 늦은 오후에 우리는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발밑은 초록이 무성한데 저 멀리 구름 속에 모습을 살짝살짝 드러내는 안나푸르나의 주봉인 사우스 2봉의 눈 덮인 하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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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의 여름, 종이에 먹, 2007 / 그림=추니박

감동이다! 힘들게 오른 만큼 기쁨도 두배,,, 나는 스케치북을 꺼내 흐릿한 봉우리를 그림으로 남겼다. 나와 일행은 어둠이 내리기 바로 전 숙소에 도착했다. 그날을 생각해보면 어떤 일을 마치고 안도의 숨을 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뻤다.

젖은 옷과 우비를 빨래 줄에 걸고 샤워를 하고 네팔 음식 달밧(Dal Bhat, 인도의 카레와 비스한 전통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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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치는 가이드 푸르나,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고통 뒤에 오는 휴식의 기쁨도 잠시 눈을 감자마자 아침이 되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젖은 옷과 우비를 챙겨 입고 길을 떠날 준비를 하는데 푸르나가 작은 막대기 끝에 소금을 천으로 싸서 묶은 것을 하나씩 나눠줬다. 그 모양은 막대사탕의 막대가 긴 형태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푸르나족 가이드는 그것으로 신발을 툭툭 쳐서 소금을 바르는 걸 보여줬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거머리가 신발에 붙으면 그 봉으로 툭툭 쳐서 거머리를 떼어내는 용도였다. 이름하여 ‘쏠트봉’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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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가는 길,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여름 우기에 안나푸르나의 산길을 트렉킹 하는 일은 정말이지 불굴의 용기가 없으면 해낼 수가 없다. 우리는 신발과 우비에 달라붙는 엄청난 양의 거머리와 나무 위에서 냄새를 맡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수부대 거머리와 싸우며 빗속의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걸어갔다.

가끔 만난 외국인 중에 하얀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있었는데 양쪽 겨드랑이에 유혈이 낭자한 걸 보고 한참을 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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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속으로 사라지는 길,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구름으로 덮힌 산길을 걷다가 나는 비가 그칠 때마다 잽싸게 스케치를 하면서 앞에 가는 아들과 아내를 따라갔다. 그때 앞에서 묵묵히 걸어가던 구름 속의 아내와 아들의 모습은 웬일인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왜 나는 그 모습을 이렇게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아주 드물게 네팔 현지인들이 쓰고 다니는 비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민가에 들어가 잘 익은 옥수수를 삶아 달라 하거나 산속 사람들의 전통 국수를 간식으로 먹어가며 젖은 옷 갈아입기를 2,3일 더하자 거머리와 싸우는 일만 빼면 걷는 건 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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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의 까만소,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점심에 롯지(산장)에서 먹는 음식 맛도 좋고 저녁마다 모여서 그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한잔 하는 맥주 맛도 좋아서 점점 걷는 일에 적응이 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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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농으로 가는 길,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그렇게 5일쯤 걸어 우리는 촛농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즐기자고 온 산행인데 계속 걸어간들 무엇하리,, 나와 아내는 그곳에서 산을 오르는 일정을 마치고 하루 동안 푹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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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과 폭포,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나는 여러 집을 기웃거린 끝에 조용하고 마당에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피어있는 나무로 지은 전망 좋은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숙소 밑으로 저 아래까지 롯지(산장)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중요한 지점의 마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너편은 하얀 구름으로 덮어있어서 도대체 어떤 풍경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안나푸르나의 둥글둥글한 산이 있으려니,,,,


운 좋게 우리가 묵는 산장의 주인이 한국의 천안에서 5년이나 음식점 일을 하고 온 사람이라 한국음식 솜씨가 일품이었다. 그는 한국말도 유창하고 닭볶음탕, 닭백숙도 잘해서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즐겁고 유쾌했다. 우리 가족은 그의 음식 덕분에 며칠 걸으며 소진된 에너지를 다 보충한 듯했다.

다음 날 오후 나와 아내는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2층 복도 난간에 서서 둘이 기지개를 켜다가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장관을 목격했다. 이틀 내내 하얀 막을 치고 있어 아예 하늘로 생각했던 맞은편 허공의 하얀 공간이 갑자기 움직이면서 반으로 싹 갈라지더니 섬 듯한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은 거대한 설산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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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 봉우리,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그 산은 여성의 산으로 알려진 안나푸르나의 유일한 남성적 봉우리로 불리는 해발 6993미터의 마차푸차레 산이었다.

우리가 깜짝 놀라서 아들을 찾는데 아들이 저 아래 산 밑 롯지에 놀러 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엄마 아빠한테 알려주려고 달려오며 소리를 질렀다. 아들이 우리에게 도착했을 땐 이미 산은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진 뒤였지만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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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 종이에 수채, 2007 / 그림=추니박

셋이 같이 서서 그 광경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아들을 달래며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 다음날 하산 길에 올랐다. 오른 만큼 내려와야 하고 또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더 위쪽은 눈이 덮여 돌아와야만 했다.

그날 그 짧은 몇 분간의 경험은 10여 년이 지난 오늘도 눈감으면 선하다.

그 구름 속의 마차푸차레는 맑은 날 촬영한 어떤 사진으로도 도저히 알아챌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만이 연출할 수 있는 위대한 기적 같은 광경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그날의 그 광경을 얘기하며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그 신비스러운 광경은 우리가 며칠간 함께 걷고 힘들어하며 의지하고 도와주며 다 같이 공유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산을 내려와 저 멀리 발아래 흐르는 강물을 보니 눈물이 났다. 뭔가 커다란 고행 끝에 깨달은 현실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바람과 비와 안개와 거머리와 싸우며 함께 그 어려운 길을 걸어준 그날의 그 아내와 어린 아들이 오늘 무척이나 보고 싶다.

그래서 여행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아닐까!

2020. 8. 3. 추니박

이 글은 2007 여름 추니박의 가족이 네팔과 안나푸르나 트렉킹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추니박과 함께 걷는 그림여행] 글·그림 추니박

추니박의그림배우기 소나무의 입체감 표현 방법 / 영상=추니박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박’으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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