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7 11:30  |  오피니언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악몽 같은 추억만 남긴 핑크빛 도시 자이푸르와 리치⑫

[아시아아츠 = 글 그림 추니박]
아그라를 떠나 나는 도시 전체가 붉은 사암과 분홍색 페인트로 치장한 핑크 도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자이푸르에서 하루를 묵고 조드푸르로 떠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르차를 떠나오며 버스 승강장에서 만났던 영국 청년 리치라는 친구와 함께 일주일째 여행을 하고 있다. 리치는 우리 나이로 20살이 된 청년인데 옥스퍼드 대학에 합격을 하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 인도에 와서 어린이 캠프 선생님으로 3개월간 자원봉사를 했단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혼자 인도 중부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 서로 혼자에다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에 흔쾌히 같이 동행을 하자고 했다. 어차피 둘 다 배낭여행을 하는 처지라 돈이 넉넉지 않아서 둘이서 함께 비용을 지불하니 숙소비가 많이 절약이 돼서 좋았다. 대신 내가 형이다 보니 물 값이나 맥주 값 등을 조금 더 쓰긴 한다. 그래도 말동무가 돼 주니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리치와 함께 다니는 여행이 싫지 않았다.

우리는 아그라에서 친따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둘이서 같이 방을 쓰고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며 지냈다. 리치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사투리 섞인 이상한 영어를 해서 안 그래도 영어가 안 들리는 내게 리치의 말을 이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호텔이나 식당 등에서 리치가 말을 하면 못 알아들어서 내가 대신 말을 해줘야 할 정도로 발음이 희한하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말을 많이 해서 가끔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아 좀 조용히 좀 하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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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 암베르성,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도라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그라에서 이곳 자이푸르로 오는 버스비는 리치와 각각 100루피씩 내가 대신 200루피를 냈는데 조금 지나 지갑을 확인하니 100루피와 500루피를 겹쳐 600루피를 지불하는 실수를 했다. 차장을 불러 사정을 이야기를 했더니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바람에 결국 내 속만 상한 채로 와야 했다. 있는 것도 훔쳐가는 애들한테 그런 항의가 통할 리가 없지,,,

얼마 전부터 양말이 필요해서 큰 맘먹고 양발 세 켤레를 샀는데 그건 아그라 숙소 테이블 위에 두고 왔다. 정말 경비를 아끼느라 먹는 것도 최대한 거동할 만큼만 먹고 다니는데 이래저래 돈을 날리고 나니 속이 많이 상한다. 설상가상 모든 숙소에서 방값을 흥정해서 깎아 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이 도시 집주인은 우리가 늦은 시간 도착해서 딴 데 갈 곳이 없다는 걸 아니까 정찰제 라며 1루피도 디씨를 해 주지 않고 방값을 다 받았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암베르성을 가기 위해 길을 잘 안다는 릭샤를 구했다. 그런데 운전사가 엉뚱하게 관광을 시켜준다면서 자기가 아는 세공가게며 천 가게 등으로 우리를 끌고 다녀서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화를 내도 그냥 웃으며 자기가 가야할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아마 가게 주인들과 계약한 분량을 맞춰야 하는가 보다 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애써 위로하고 참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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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불쌍한 코끼리,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릭샤에서 내려 성위로 올라가는 길엔 사람들이 넘쳐나고 관광객을 태운 코끼리들이 더운 날씨에 지쳐 중간중간 멈춰 서서 헐떡거리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암베르성은 힌두사원 중에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에 꼽힐 정도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이라고 했다. 명성만큼이나 성 안을 꾸민 각종 문양과 장식이 눈부신 보석들로 치장돼 있어서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였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현대미술의 한 전시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하고 디자인적으로 완벽했다. 그 옛날 자이푸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크리스털과 루비 등이 나오는 지역이라 화려하게 장식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슬람과 힌두의 양식이 교묘하게 섞여서 독특한 디자인과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았다.

실제로 자이푸르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최초의 도시이기도 한데 라자스탄에 속했던 이곳은 이슬람과 힌두교가 함께 공존했던 곳이다.

성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면서 기사에게 우리가 내릴 곳을 알려주며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종점까지 가서 어렵게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화내는 나에게 버스 운전사는 눈만 깜빡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인도식 표현만 하고 말았다. 하하하 그냥 웃어야지,,,,인도는 그런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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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파는 사람들,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더군다나 정류장에서 숙소로 오기 위해 탄 사이클 릭샤는 우리가 묵는 호텔을 안다고 해 놓고 영어도 못하는 데다 지리까지 몰라서 골목마다 헤매느라 자이푸르 골목을 다 들어가 본 것 같다. 덕분에 자이푸르 관광을 공짜로 한건 좋은데 우리는 완전히 지칠 대로 지쳐서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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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말 다섯 켤레,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리치와 나는 저녁 7시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밤 11시 기차를 타기 전에 남은 시간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며 보내기로 했다. 양말 사기와 피자 먹기,,,, 우리는 역에다 배낭을 맡기고 아그라에 두고 온 양말을 다시 사려고 낯선 거리를 뒤져 한참 만에 어렵게 가게를 찾아 양말 두 개를 50루피에 샀다. 그동안 얼마나 걸어 다니고 매일매일 빨았는지 양말이 구멍이 나서 기필코 사막으로 가기 전에 양말을 사야만 했다.

리치는 인도음식에 지친 터라 꼭 피자와 햄버거를 먹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나는 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서 피자헛을 찾아냈다. 한국에서도 잘 가지 않는 피자헛을 낯선 인도에서 가보니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미국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어딘가 그 느낌이 인도스러운 것이 마치 개념 미술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햄버거 속에 인도음식에 꼭 들어가는 맛살라(인도 향신료)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다. 인도에서 햄버거를 먹을 땐 꼭 ‘노 맛살라’를 주문해야만 향신료를 빼고 준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멋진 이별에 술이 빠질 수 없으니 우리는 도시를 뒤져 자이푸르에 하나밖에 없다는 맥주 바를 찾았다. 맥주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싸서 좋았지만 술집의 인테리어는 우리나라 옛날 시골 다방과 똑 같았다.

구석의 벽지는 찢어지고 모서리 머리 위에 놓인 티브이에선 옛날 우리나라 신성일, 엄앵란 씨가 찍었던 영화와 똑같은 방식,,, 그러나 뮤직비디오 처럼 제작된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인도 영화는 춤과 노래가 빠지면 영화가 아닐 정도다. 그 정도로 인도 사람들이 흥이 많다는 얘긴가! 그런데 이 만한 도시에 술집이 딱 이 집 하나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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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리치, 종이에 먹, 2001 / 그림=추니박

그 친구와 짧지만 서로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을 같이 즐기고 기분 좋게 기차역으로 돌아와 이별을 했다. 서로 나이와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둘이는 아주 많은 정이 들어서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 한 번씩 안아주고 슬픈 이별을 했다.

리치는 델리로 나는 조드푸르로,,,,여행은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일이다. 인생처럼,,,,,

이런! 그나저나 시내를 돌아다니느라 새로 산 양말을 리치의 가방에 넣는 바람에 나는 또 양말을 잃어버린 격이 되었다. 리치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안녕 리치! 착한 친구,,, 그대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2001. 2. 6. 자이푸르 기차역에서


[추니박의 인도 여행기] 글·그림 추니박(아티스트 박병춘)


한국화가 추니박의 작업실 시스템 엿보기 /
영상=Chuni Park추니박 유튜브

추니박(박병춘)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을 비롯해 32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 산수풍경시리즈를 시작하고 그동안 독특한 작품을 발표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그는 2010년 중앙일보 주최 평론가가 뽑은 3040작가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추니아트’로 미술 애호과들과 소통 중이다.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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